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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21:25

한국 천주교회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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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해박해 (헌종5년 서기 1839)
( 1838
년부터 1840년까지 3여년에 걸친 박해
)
1834
년 재위 34년 만에 순조가 돌아가시고 불과 8세의 어린 몸으로 왕위에 오른분이 바로 헌종이다
.
국왕이 나이가 어려 순조비였던 순원왕후의 수렴정치가 시작되었고, 처참한 박해가 시작된 것은 1839년 이지연이 집권하면서 부터였으며 이 때 바로 79위복자중 70명의 순교 복자를 낳게 되었다
.
그만큼 박해는 계획적이리 만큼 엄하고 잔인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
기해 박해라 하여 반드시 기해년(1839)에 벌어진 것은 아니다
.
1838
년부터 1840년까지 3여년에 걸친 박해이다
.
헌종 5년에 우의정 이지연을 중심으로 대박해가 착수케 되는데 이때 소위 묘당회의가 있었다. 순원왕후 김대비를 모시고 어전회의가 열렸을 때, 좌포장 남헌교가 사교금압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고 우의정 이지연이 이를 저지하여 엄벌을 내세웠다
.
그 결과, 김대비는사학을 일삼고 있는 천주교인들을 한사람도 남김없이
없애버리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울 뿐 아니라 온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
라고 명을 내렸고 양력 4 20일에 정식으로 박해 법령시 천하 또한, 박해령이 내린 후 최초로 순교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정 쁘로따시오인데, 그는 1839 4월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견디다못해 배교를 함으로써 풀려났으나, 즉시 뉘우치고 스스로 관가에 출두하여 배교를 취소하고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
또한 15세의 어린나이에 순교한 복자 이정희 발바라,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읜 고아의 몸이었으나 열심한 교우였던 그의 아주머니 순교자 이 막달레나와 이 발바라의 훈도로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다 그만 검거되어서 감옥에 투옥되었다
.
그러나 비위생적인 감방에서 그만 염병이 옮아 1주일동안 병고에 시달리다 귀천하였다
.
기해 박해때 순교하신 세분의 성직자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땅 신부가 순교하였다. 세분의 성직자는 군문효수의 선고를 받고 한강변 새남터에서 집행하였다. 20여일이 지난후에 삼성산에 모셔졌고 명동성당(1901)을 거쳐 지금은 양화진 성당에 모셔져있다
.
1839
9 21 3분의 성직자가 순교하신 다음날 정하상,유진길 참수 당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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