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자가 되려면

천주교 신자가 되려면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려면 천주교의 교리와 교회 생활에 대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교육을 '예비자 교리'라고 하며,

성당에서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교리교사들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간은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입니다.

 

여기 덕산동성당에서는 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4월 전후에 교리를 시작하여 12월 성탄절 전에 그리고

10월 전후에 시작하여 다음해 4월 부활절 전에 세례를 받습니다.

 

천주교 신자는 누구나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 성당에 소속됩니다.

성당은 천주교의 일정한 신자 공동체로서 신부님이 성당안에 상주하며 신자들을 보살피는 지역을 말합니다.

천주교에 입교하시려면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성당에 먼저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 곳 사무실에서 예비자 교리에 대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희 성당 구역(덕산동, 이동, 자은동, 풍호동, 석동, 장천동, 행암동, 수치마을, 웅천지역)에서는 덕산동성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2. 예비자 교리 시간

 1) 교리시간

   일반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9시 지하 회합실

              매주 일요일 오전 9시~10시 지하 회합실

 

 2) 교리 담당자 : 신부님, 수녀님, 여정봉사자

   일반부 목요일 저녁반:  신부님

             일요일 아침반:  수녀님

 

 3) 교리반 일정

   교리에 대한 문의는 덕산동성당 선교분과장( 010-4846-6452 : ch101101@hanmail.net)로 연락하시거나

직접 사무실로 찾아 오시면 자세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3. 천주교란?

 1) 천주교는 어떤 종교에 속하는가?
   모든 종교는 믿음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 대상은 태양신, 산신 등의 자연물이나 신격화한 인간 등으로 아주 다양합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믿는 신은 유일신(唯一神)으로 만물이 있게 된 원인이신 창조주로서의 신입니다.
   이 신을 하느님 또는 천주님(天主任)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지혜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종교와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이루어 볼 수 없는 초자연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앞의 종교들을 자연 종교라 하고, 후에 말한 종교들을 초자연 종교라 합니다.
   천주교는 후자인 초자연 종교입니다.
   천주교는 우주 만물의 근원을 이루신 창조주 유일신을 믿으며 초자연의 계시(啓示)로 이루어진 종교입니다.

 2) 천주교의 이루어짐
   만물이 시작되는 그 근원의 힘으로부터 천주교는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 근원이신 힘, 곧 전능하신 힘을 지니신 절대자를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깁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천주교는 형성되어 내려왔습니다.
   특히 인류의 윤리발전과 그 형성을 따라 외형적 발전과 더불어 내용도 심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형성 과정에서 인간들이 부족하여 잘못한 점들때문에 시련을 겪으며 내려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과 대화(예언자들을 통한)가 어느정도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역사의 시점에서 친히 인간(예수)이 되시어
   모든 인간들과 두루 대화(공통된, 보편적, 공번된 답변=Catholic의 뜻)를 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기를 역사의 기원(A.D.:Anno Domini, 주님의 해,서력 기원, 서기)으로 택하여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합니다.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인생이 두 인생이 아니었던 만큼 예수님의 가르침도 하나(일치된 종교)입니다.
   현재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모든 답변(사도들로부터 이어내려 오는)을
   보다 깊고 보다 제대로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며, 동시에 이를 알아 믿어야 할 진리로 주장하며,
   알아들은 바를 생명으로 받아 살아가려는 종교입니다.

 3) 천주교의 종교적 영역
   천주교의 종교적 영역은 하느님의 영역을 말합니다.
   구태여 구분하여 본다면
   영적세계(순수한 영들인 천사들의 무리와 죽은 영들의 세계=볼 수 없는 세계)와
   사물의 세계(전 우주의 세계, 무생물과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곳= 볼 수 있는 세계)로 나누어 표현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은 하느님을 정점으로 모시는 교회며
   이 교회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교회(불가견적 교회 : 不可見的敎會)와
   현세적으로는 교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교회(가견적 교회 : 可見的敎會),
   모든 지역교회가 횡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4) 몇가지 알아야 할 단어
  ① 교회(敎會)
    교회라는 말은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교회 건물을 말하기도 하고, 천주교 내에서 쓸 때에는 천주교 자체를 대신 하기도 하며,
    수식어를 앞에 붙임으로 특정 종교를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② 천주교회(天主敎會)
    한국에 가톨릭이 들어올 때 중국을 통해 들어오면서 
    天사상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공교회(公敎會)라 합니다.
  ③ 가톨릭
    '공통적이다, 누구에게 관련된다.'는 어원을 지니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성격을 보아 2세기 초부터 붙여진 말입니다.
  ④ 성당(聖堂)
    가톨릭의 종교적 제반 사항을 정식으로 행하는 집을 말합니다.
  ⑤ 본당(本堂)
    성당을 일컫는 말이지만 소속 개념의 뜻으로 말할 때 사용합니다.

 5) 본당안내
  ① 본당 사무실
    교적(敎籍)을 위시한 본당의 교회 사무를 보는 곳이며 사무실 책임자를 사무장이라 부릅니다.
  ② 사제관(司祭館)
    본당을 담당하는 신부(神父)님(들)이 사시는 집을 말합니다.
  ③ 수녀원(修女院)
    본당의 수녀님(들)이 상주하는 곳입니다.
  ④ 활동 단체
    신자들로 구성된 각 단체들 중에는 본당의 기본적 구조에 드는 단체들이 있고 
    그 외 보조 및 봉사 또는 친목과 신심을 목적으로 한 단체들이 있습니다. 
    사목위원회, 구역장단, 반장단, 주일학교 등은 기본적 구조에 드는 단체들이며 
    신심과 봉사의 단체로는 레지오 마리애나 성가대 등 본당의 신자들 수나 규모에 따라 다릅니다. 
    그 외에는 일반사회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주일학교 교실, 회합실, 교리실, 휴게실, 면담실 등등 목적에 따라 붙여지는 말들입니다.

 6) 성당내부 안내
  ① 성상(聖像)들
    성당내에 있는 성상들은 성당에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은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신성한 분위기를 돕는 예술적 작품들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② 중앙 십자가(中央十字架)
    성상(聖
)류에 들며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중앙 앞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 인생의 최종 강조점으로 믿음행위의 시각적 효과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모색으로 부활의 장면이 나 심판의 장면 또는 승천(昇天)의 장면들도 서서히 등장하고는 있습니다.
  ③ 중앙 제대(祭臺)
    가톨릭의 제사인 미사를 드리는 제단입니다.
  ④ 감실(龕室)
    미사 중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리스도의 몸(성체 : 聖體)인 빵의 형상(최후의 만찬을 재현)을
    신자들이 받아 모신(영성체 : 領聖體)후 여분을 모시는 장소로 성당내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곳입니다.
  ⑤ 성체등(聖體燈)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등입니다. 
    붉은색 계통의 작은 등이나 전통적인 것은 기름으로 켭니다.
  ⑥ 십사처(十四處)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 장면을 14처(Station)로 나누어 표현한 것입니다. 
    각 장면을 순서에 따라 음미하며 우리의 인생길을 깊이 생각하면서 기도를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십자가의 길"이라 합니다.
  ⑦ 성수대(聖水臺)
    씻는 정화 예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물그릇입니다. 
    이 물을 손으로 찍어 성부, 성자, 성령(=하느님의 이름)의 이름으로 
    십자표(이마, 가슴, 양 어깨)를 긋습니다. 이를 십자성호라 합니다. 
    이 물은 일반 물과는 달리 거룩한 용도로 쓰기 위해 의식을 거친(축성 : 祝聖)것입니다.
  ⑧ 고해소(告解所)
    화해의 의식을 행하는 곳으로 하느님과 이웃에게 잘못한 죄를 뉘우쳐 용서 받는 화해소입니다.

 

4. 신자가 되는 과정

 1) 예비자 교리반
   모든 본당에는 예비자를 위한 교리반이 있습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신념을 지닌다는 것이며,
   이 신념은 자신이 사는 자세와 직결되어야 하므로
   종교는 단순한 동의나 호기심 또는 친지와의 의리나 강요로 간단히 받아들일 문제는 아닙니다.
   종교생활은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신활동을 정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신앙생활이 보람되고 가치가 있습니다.
   아직 철이 나기 이전의 어린 아기들에 대해서는
   부모들에게 후에 잘 교육하겠다는 책임을 교회는 다짐받고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현재 가톨릭에서는 일반적으로 60시간 전후의 교리수업을 받아야 세례를 받게 합니다.
   시간만이 아니라 그 기간도 최하 3개월 정도에서 1년 또는 그 이상일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교리수업이 끝난 후에는
   세례를 주례할 사제(주로 본당 주임신부)에게 배운 것에 대한 확인을 받고 결정을 얻어야 합니다.

 2) 예비기간의 의의
  ① 신앙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신앙을 아직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 들이지는 못했어도, 
    배워 보려는 의향 자체는 이미 첫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이미 간접으로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예를 든다면 예비자가 혹시 사망할 경우에 모든 의식을 종교적으로 행할 수 있는데 
    이는 본인의 지향으로 이미 동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② 예비자단에 입적한다는 점에서
    지향의 표현을 서류로 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자유스러운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 표시를 공적인 서류로 한 것입니다.
    출석표나 예비자 출석카드 등이 이에 속합니다. 
    가톨릭은 예비자들에게 예비기간에는 항상 예비자 카드를 갖고 다니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간혹 다른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한 후에 
    그 성당에서 확인을 받게 하는 것은 이미 예비자 교육으로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3) 교회의 일원인 예비자
  ① 신념의 결단을 위하여
    예비기간을 둠은 인간이 인격적 행위로 신과 연관된 삶을 정하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가톨릭은 인간의 현세생활을 위해 복과 풍요로움을 위한 인간 중심적 종교는 아닙니다. 
    가톨릭 종교의 중심이 되며 기둥이 되는 내용은 하느님입니다. 
    예비기간은 하느님의 뜻을 듣고 배워 동의를 하며 결심하여 마음이 굳어지도록 하는 기간입니다.
  ② 자신의 생활변화를 위하여
    빨리 뜨거워지는 것은 빨리 식는 법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감정적 동물이라고 해서 종교적 생활을 감정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유치한 유아적 모습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인간적 요소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핵심은 이성이나 지성 그리고 감정을 주관하는 자아의식 능력이라 봅니다. 
    종교생활 역시 습관을 통하여 서서히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간혹 신의 부르심은 한 순간에 누구에게 와 닿을 수도 있으나 
    이는 신의 자유로운 방법이지 인간의 방법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③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사도로부터 2,000 년간 하나로 이어져 내려온 가톨릭의 일치된 모습에서 
    이미 신비의 나라가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인간들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종교들 역시 천태만상의 형태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4) 익혀가야 할 내용들
  ① 교회의 일반 상식
    종교생활도 인간사회의 일면입니다. 어떤 사회이든 그 사회의 분위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오랜 기간 동안에 형성된 종교적 풍습과 전통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간혹 이상하게 느낄 수 있는 면이 있다해도 그 하나 하나에는 생기게 된 동기나 뜻이 있습니다.
  ② 신앙인들의 생활
    신앙인들은 이 세상이 일치와 평화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생활을 익혀 나가야 합니다. 
    하루의 생활이나 1주간의 생활, 1년의 생활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완성을 향한 삶을 배워 나아가는 것이 참 신앙인의 생활입니다.
  ③ 교회의 전례생활
    본당의 공동체 생활은 가정생활과 개인생활에 연결되어 
    예절 바른 생활로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입니다. 
    교회의 전례생활은 가톨릭에서 특히 강조하는 생활입니다. 
    사실 개인의 편의만을 주장하며 산다면 이 세상에 평화와 안녕은 힘을 잃고 맙니다. 
    하느님을 의식한다는 뜻은 보잘 것 없는 이웃을 의식한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이런 생활은 하느님 앞에서 예절이 바른 행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을 하노라면 또 하나의 세계를 맛보며 사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새 세상, 하느님 나라의 생활을 알게 됩니다.
  ④ 교리(敎理)사항들
    교회의 이론들을 배웁니다. 
    교회의 인간관, 신관, 구원론, 성서의 의미, 믿어야 할 내용들 
    즉 하느님이신 창조주의 섭리를 통해 가르치심을 받은 내용들을 
    인간의 지성으로 발전시킨 내용들을 배우는 일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일반 사회교육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분야들로 사물을 초월한 내용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인들은 상식으로 생활을 엮어가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 주장이 확고하고 영원한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집스러운 삶에 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불멸하는 진리를 배워 믿음으로 의지의 힘으로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창조주의 섭리적 계시와 인류의 깊은 현명이 맞닿아 익혀진 내용들입니다. 
    무조건 광신적으로 무책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삼갈 일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고 지혜를 주어 우리가 책임을 진다는 것도 계시의 바탕을 이룹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생활태도는 세상의 대표자인 자세를 객관적으로 취하며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5) 세례받기 전에 준비할 사항
  ① 대부모(代父母)선정
    가톨릭에서는 모든 세례자(洗禮者)와 견진자(堅振者)들에게 대부모를 정하게 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상태에서 부모와 자녀의 영적 연결을 맺어주는 것입니다. 
    기성 신자들이 적은 한국의 실정에서는 남자는 대부만, 여자는 대모만을 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대부, 대모 두 분을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② 세례명을 정함
    이는 신앙인으로 거룩하게 살다 간 신자들의 이름을 자신의 세례명으로 쓰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 생활을 한 사람들을 성인이라 하는데, 
    이는 교회가 그들이 죽은 후 초자연적 현상으로 판단된 기적을 참작하여 
    신앙의 모범자들로 공식 발표한 분들입니다. 
    이렇게 성인들의 이름을 자신이 사용함으로 그 성인을 본받으려는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③ 교적 입적, 교무금 책정
    교회에 적을 둠으로 신앙 생활의 직접적 연결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혼인이나 사망이나 기타 종교의식 외에도 종교내의 서류 제반에 행정적 연결이 되기 위함입니다. 
    교무금은 하느님 나라의 발전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 위하여 
    자신이 경제적으로 일부를 바치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십일조를 의무 사항으로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자원(성의)으로 책정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5. 믿는 자의 삶

 1) 봉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모두 봉사(奉仕)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의 생활전체는 오직 인류에 대한 사랑의 봉사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장님을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으며, 앉은뱅이를 서게 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시는 등
   그 분의 일생은 인류에 대한 봉사로 일관하셨으며,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상에 못박혀 돌아가시기까지 구원의 봉사를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마르코 10, 45)"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도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 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코 10, 42-44).
"
   또한 최후의 만찬 때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 14-15)."
   이와같이 예수께서는 자신이 봉사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생활할 것을 원하십니다.

 2)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

   가톨릭 교회는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정화시킬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만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교회는 현실세계 안에 있으면서 세계와 함께 살며 일합니다.
   사실 현대인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입니다. (사목헌장 1항 참고).
   우리는 일상생활 안에서 즉 가정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생활로써 증거하여 전하며,
   사회를 살리는 누룩이 되고,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고 사회를 비추어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빛이 되고, 세상의 부정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를 부르짖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한 이 사회에서 인간의 권리를 회복시키고
   물질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시대에 있어서든 그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과 천대받는 사람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긴박한 사정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사회의 양심을 일깨워 주어야 하고
   사회가 절망에 빠졌을 때에는 위로와 격려의 힘찬 말을 해줌으로써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즉 교회는 인류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하는 동시에
   그 공동체를 하느님께로 가까이 이끌어 갈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3) 사랑과 봉사의 삶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은 가정, 학교, 사회, 국가 안에서
   서로 도우며 유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그만 사회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맡은 바 역할을 다 함으로써 평화가 유지되고 서로 돕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봉사생활(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에 봉사하고 그런 생활 안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크고 무한하여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사랑(요한 15, 13)"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사랑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고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하느님의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랑의 표현이 바로 봉사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르며 그 행동은 조건없는 봉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봉사함으로써 뚜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봉사없는 곳에 사랑이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에 봉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으려고하는 우리 신앙인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해 있는 그곳에서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즉 직장에서, 농토에서, 또는 가정에서 여러가지 맡은 바 직책을 다함으로써
   이 세상의 임무를 완수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임무는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소명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존중하고 있으므로,
   인간에 대한 봉사는 가장 가치있는 행위입니다.
   더구나 이웃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때(마태오 25, 40 참조)
   우리의 봉사는 한층 더 보람있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이웃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가장 정확한 길이며 표현입니다.

 4) 보람찬 삶을 위하여

   "오늘에 있어서 사랑의 운동은
   실로 모든 사람과 모든 궁핍에 파급될 수 있고 또 마땅히 파급되어야 하겠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의학, 교육, 직업 등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빼앗긴 사람들, 가난과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
   추방을 당하고 옥고를 겪는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그들을 찾아내어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평신도 교령 8항).
"
   "특히 현대에 있어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에게나 이웃이 되어주고 누구를 만나든지
   적극적으로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컨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노인, 불의하게 천대받는 외국인 노동자, 피난민,
   불법 혼인에서 태어나 부모의 죄 때문에 탓없이 억울하게 고생하는 사생아.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오 25, 40)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우리 양심을 재촉하는 굶주린 사람, 이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 줄 의무가 있다(사목헌장 27).
"
   우리는 인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에 입각하여 이 세상에 봉사자로서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눈으로서 이 세상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서 이웃과 사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요한1서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