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인’
설 명절, 톨스토이의 단편 ‘두 노인’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머리에 재를 얹고 은혜로운 사순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거창한 슬로건도 특별한 계획도 없다. 다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신앙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추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두 노인’은 인간이 신을 섬기는 참된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순례라는 종교적 행위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성지 예루살렘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의 삶 한가운데다. 작품을 읽으며 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 신앙을 지켜 온 그들은 성지를 향한 순례를 결심한다. 그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평생의 소망이 담긴 약속이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지만, 어느 순간 한 노인은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는 한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지닌 돈과 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 결국 그는 성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반면, 다른 한 노인은 끝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해 성지를 둘러보고 예배를 드린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신앙적 의무를 완수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은 묻는다. 과연 누가 진정으로 신의 뜻을 따랐는가. 톨스토이는 화려한 기적이나 극적인 사건 대신, 한 인간의 조용한 선택을 통해 답을 제시한다.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남은 노인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일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발견한다. 그가 행한 일은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의식은 아니었지만, 그 정신은 사랑과 자비라는 신앙의 본질에 가까웠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형식적 신앙과 실천적 신앙을 대비한다.
이제, 두 노인의 귀환 과정을 살펴본다. 먼저,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오두막으로 들어갔던 노인의 귀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결국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긴 순례를 마치지 못했기에 혹시 실망이나 후회가 남아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의 집은 크게 달라져 있지 않다. 가족은 여전히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생활은 예전처럼 소박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전과 다르다. 타인의 생명을 살렸다는 확신과 평안이 그의 내면을 채우고 있다. 집은 여전히 가난할지라도, 그 안에는 이전보다 깊은 감사와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그는 성지를 보지 못했지만, 자신의 집 안에서 이미 신의 뜻을 실천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했던 노인의 귀환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그는 성지를 밟고 예배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과 이웃들은 그의 순례를 칭찬하고 존경의 눈길을 보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약속을 지켜낸 사람이다. 그의 집 역시 이전과 다르지 않다. 농사와 생활은 그대로 이어지고, 일상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순례 길에서 잠시 헤어진 동료가 보여 준 선택과, 그 속에서 느꼈던 묘한 깨달음이 그의 내면을 흔든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찾았지만, 어쩌면 길 위에서 만났던 이웃 속에 하느님이 있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순례자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성찰을 시작하는 사람이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신앙뿐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고통과 다른 이들의 절박함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가? 참으로 부끄럽지만 뭐라 대답할 수 없다. 나는 반성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외면하지 말고 관심을 갖자고. 톨스토이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조용히 비추며, 사랑을 실천하는 선택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길임을 일깨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작가가 인물을 판단하거나 직접 설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두 노인’의 대비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성지에 도착한 노인 역시 악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신을 섬기려 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두 노인’은 분량은 짧지만 여운은 길다.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어디에 도달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신앙의 본질이 사랑과 희생, 그리고 이웃에 대한 연민에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두 노인’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길 위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성지에 도착하는 기쁨을 택했을까, 아니면 눈앞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진정한 신앙과 인간다움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손길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두 노인’은 그 소박한 진리를 담담하게 전하며,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이다. 기회가 된다면, 깊어가는 사순시기에 이 작품을 읽어 보길 권유하고 싶다.
-2026,2,24일, 김종복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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