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덕산성당 25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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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히게 되었는데, 인근 주민들이 성전건립반대 시위와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 교 교사실의 오래된 집기를 새로 구입하여 업무와 활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렇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비록 가건물이긴 하지만 임시성전과 사제관을 완공하 2011년 제6대 김국진 가우덴시오 신부가 부임 후 여성복사단을 창단하고 제대 카페
여 1993년 10월 4일 교구장 박정일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짐으로써 아늑한 성전 트 교체, 전기 승압 공사 및 배전판 교체, 감실교체, 성전 내부와 지하 강당, 회합실,
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모회, 주일학교 자모회, 모니카회, 하상 바오로회, 천주 계단 도색 작업 및 성당 뒤편 콘크리트 바닥 공사를 실시하여 본당을 새롭게 단장하고
의 모친 꾸리아 창단등의 신심단체를 설립하면서 본당으로서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보다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힘썼다.
1996년 7월 제2대 주임 배진구 신부 부임 후 진해시와 국공유지 교환으로 성전 부지 2015년 제7대 정중규 클라로 신부가 부임한 후 3년 과정의 성경학교 개강, 성체신심
를 290평에서 578평으로 확장하여 새 성전 신축 계획을 수립하고 새 성전 신축을 위한 세미나 개최, 성령 은혜의 밤 등의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여 신자들의 신앙교육에 심혈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하여 2000년 9월 성전신축 기공식을 가진 후 새 성전을 을 기울였으며 노인대학 신설, 다문화 가정과 소외된 사람 중심의 이웃사랑 실천의 장
완공하여 2001년 10월 교구장 박정일 주교의 집전으로 성전 봉헌식을 가짐으로써 가건 을 마련하였다. 또한 하늘의 여왕 꾸리아와 천주의 모친 꼬미씨움을 창단하였다.
물 시대를 마감하고 어엿한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300운동(영세자 100명, 회두자 100명, 행동 단원 100명)을 목표로 본당 25주년 기념사업을
그리고 예수 성심 시녀회에서 본당에 분원을 설치함으로써 전교수녀를 파견하게 되 위한 바자회 개최 2회, 성물방 및 나눔터와 사제관, 화장실 신축, 지하창고 리모델링(세
었고, 성모당을 건립하고 연령회, 빈첸시오회, 중고등부자모회, 여성연합회, 복사단 자 개의 멋진 회합실 탄생), 본당 화폐 발행, 새 성모당 축복식 등으로 본당 설립 25주년을 앞
모회, 기술봉사단 등을 설립하여 본당발전을 꾀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두고 많은 시설들을 재정비하여 이 지역 중심 본당으로써의 면모를 가꾸었다.
그런데 2002년 제3대 주임 김순곤 신부 부임 후 2003년에 불어 닥친 태풍 '매미'로 신
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에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십자가상과 성전로비 천정 등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어 모든 신자들이 성전복구에 힘을 쏟았다. 이 시기에 본당주보 '빛
과 소금'을 발간하여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2005년 1월 제4대 주임 배기현 콘스탄틴 신부가 부임한 후 용원지역의 신항만건설에
따른 인구 3만 명의 신도시 조성으로 성전 건립이 시급해졌다. 그래서 임시성전을 마
련하여 2005년 10월 5일부터 요양 중이던 신정목 우르바노 신부가 상주하면서 주일과
평일미사를 집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원거리에 있던 웅동 지역 신자들의 불편해소
는 물론, 신도시 유입 주민에 대한 전교활동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또 천상의 모후 꾸
리아를 창단하고 제대회를 창립했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부와 청년회 밴드를 창단하여
역동적인 미사 전례를 통해 젊은이들의 신심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009년 제5대 김영식 알로이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플랜카드 게시대를 설치하여 여
러 가지 안내를 한 눈에 띄게 할 수 있게 하였으며, 지하 강당에 고정식 빔 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성전 안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하여 미사 전례곡 안내를 보다 용이하게 하였
다. 또한 성모당 앞에 신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잔디밭과 벤치를 설치하였고 주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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