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덕산성당 25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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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웅동공소
웅동공소는 1957년에 설립되었다고 마산교구 10
년사에 기록되어있다.
사실상 웅동공소는 사라호 태풍(1959.9) 이후 다시
지어진 공소였으나 공소예절만 할 수 있을 뿐 다른
부속건물이 없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웅동 공소 그러다가 경화꾸리아가 설립되면서 레지오 단원
들이 매주 파견되어 공소예절을 하게 되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방 하나가 만들어 지면서 관리를 할 수 있었다.
1992년 6월 28일 웅동공소 성모상이 제막되었고 박용규(베드로)가 공소회장을 맡아
현재 웅천 공소
정기적인 예절이 봉헌되었으나 1992년 8월 경화본당에서 덕산본당이 분리되면서 웅동
하였지만 사실상 공소신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은 어 공소는 덕산본당 소속으로 이관되었다가 2007년 12월 26일 용원본당이 신설되면서 용
려웠고 경화본당 레지오 단원들이 주일마다 방문해 원본당으로 이관되었다.
서 예절을 시작하면 그때서야 신자들 집에 연락이
가서 하나, 둘 신자가 모이면 예절이 시작되는 실정
이었다. 본당차원에서 월1회 정도 공식방문이나 미
사도 없었으며 본당 신부가 바뀌면 공소확인 차 한
공소 제대
번씩 방문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경화 제8대 주
임 정영규(마르코) 신부가 부임하면서 1986년 4월에
웅동공소 성모상 제막식
웅천공소 부지가 도시계획에 따라 일부가 도로부
지로 편입됨으로써 도시계획으로 떨어져 나간 웅천
성내동 413번지 땅 99평을 팔아 기존의 공소부지 3. 진해 지역의 첫 성당 건립
성내동 414-1번지에 공소를 신축하기에 이르렀고
현재 성모상
그 해 10월에 현재의 웅천공소를 준공하였다. 스스미가 죽은 뒤 김백수 일가는 요사이 마을(현재 진해 태백동)에 정착하게 되었고 공
1992년 8월 경화본당에서 덕산본당이 분리되면서 웅천공소는 덕산본당에 소속 되었 소를 돌보며 전교에 힘썼다. 해방이 되자 미군이 진해에 주둔하기 시작하였고 현 진해
다가 2007년 12월 26일 용원성당이 신설 되면서 용원성당으로 편입 되었으나 2010년 9 여고 자리를 군정청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미군 신자들을 위해 군종신부가 진해로
월 7일, 신자들의 미사참례를 위한 이동시에 겪는 어려움으로 덕산본당으로 재편입되 왔는데 그가 드레그(Dreg)신부였다. 드레그 신부는 우선 경화공소에서 미사를 드리며
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 신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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