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덕산성당 25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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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들 부부는 일본의 나가사끼에서 진해로 건너와서 진해에 주둔                                                                   몇몇의 예비자들이 모이게 되었는데 장소는 주로 김백수의 집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에 식품을 납품하던 상인이었다. 그가 주로 취급했던 식품은                                                                   노력이 당시 마산포 본당의 목 신부에게 보고되었다. 아마도 목 신부는 판공성사를 위
            돼지고기였고 쇠고기도 일부 취급하였는데 시내에서 정육점도 운영하며 고기와 함께                                                                    해 안민공소를 방문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목 신부의 배려

            햄, 소시지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그의 정육점과 가내공장은 중원 로터리 근처에                                                                  로 1929년에는 진해지역에 충청도 출신의 이 마리아라는 전교회장이 파견되기까지 하
            있었다.                                                                                                           는데 그는 김백수의 집에 거처하며 예비자들을 가르쳤고 전교에 힘썼다고 한다.

              스스미는 자신이 직접 돼지를 키웠는데 돼지는 약 300마리, 소는 30마리 정도 되었
            다고 한다. 당시로선 꽤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운영했던 양돈장 즉 돼지 막사

            는 지금의 여좌동 3가 일대에 있었다. 현재 여좌동 3가 입구에 있는 굴다리 뒤로 25평                                                                2. 진해지역의 공소
            정도 되는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고 바로 그 뒤가 스스미씨 소유의 돼지 막사와 소 막사

            들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① 충무동 공소
              스스미는 돼지고기를 납품하면서 부대 식당에서 버리는 음식 찌꺼기를 얻어다 돼지                                                                    1930년,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현재 충무동 6가 28번지로 되어 있는 송백장 여

            먹이로 사용하였다. 이런 힘든 일을 하자니 자연스럽게 정직하고 건장한 인부들이 필                                                                  관 자리에 진해의 첫 공소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의 주소로는 오오데도리 28번
            요하게 되었고, 그는 몇몇 조선인들을 인부로 고용하게 되었다.                                                                             지였다. 공소를 짓는 자금의 대부분은 스스미가 부담하였는데 부인의 간곡한 권유가

              스스미는 당시 경화지역에 살고 있던 일본인 종묘상인인 요시다에게 일본말을 할 줄                                                                 있었다고 한다.
            알며 천주교 신자인 조선인을 소개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당시 안민 신자들은 경화장                                                                   공소축성은 당시 대구교구의 안세화 프로리안 드망즈 주교 사목방문에 맞춰 이루어

            을 보러 다녔기 때문에 요시다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일본에서 10년간 살았                                                               졌고 그곳에서 3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공소 건물은 일본식으로 지은 까만
            던 경험이 있어 일본말을 잘하는 김백수가 스스미에게 소개되었다.                                                                            도단 집이었고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다고 한다.

              1927년 가을, 김백수는 가족들과 함께 안민에서 진해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 후                                                                 진해 공소에 관한 최초의 공적인 기록은 대구교구의 드망즈 주교의 1933년 보고서에
            1929년에는 안민의 신자로써 일본말이 유창하고 자신의 처남이었던 임춘대와 현재만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스스미는 이 세 가족에게 도단 집을 지어 살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안민의 신자 가족이 진해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얼마 후 현재만은 일본으로 이사                                                                       “베르몽 신부는 자신의 새 교우 촌들이 정상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기꺼이

            를 갔다. 그러자 임춘대는 현재만이 살고 있던 집으로 자신의 처남이었던 김상도를 불                                                                      인정하였습니다. 신부는 마산 포에서 교리를 배운 44명의 성인에게 세례를 주었
            러오게 되는데 그는 창원 동면에 있던 곡목공소 신자였다. 세 사람은 스스미를 도와 부                                                                     고 진해의 새 공소는 영세자 14명과 예비교우 15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최근 이

            대에 육류를 납품하며 진해에 뿌리를 내렸다. 한편 당시는 조선인들의 생활이 매우 가                                                                      곳에 작은 성당이 건립되었는데 이 성당 건물의 대부분은 그곳의 한 훌륭한 일본
            난했던 시절이라 부대의 생필품이나 음식 찌꺼기도 가난한 살림살이에 많은 도움이 되                                                                       인 교우의 도움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 천주교 부산교구 발행 223면 참조

            었다.
              그래서 이들은 부대를 드나들면서 버리는 음식이나 물건들을 모아 인근의 어려운 사                                                                   여기서 말하는 작은 성당은 충무동 공소를 말하며 일본인 교우는 스스미를 말한다.

            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자연스레 전교에 힘쓰게 되었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진해에 공소가 세워지자 신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1931년에는 장로교회 장로였던





            58  덕산성당 25주년 발자취                                                                                                                                                       제2부. 본당의 역사 및 특징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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