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덕산성당 25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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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진해지역의 천주교 전래                                                                                             야는 강화회담을 갖게 되는데, 이 무렵 고니시의 군대는 경상도의 해안지대에 주둔하

                                                                                                                           면서 작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전쟁에 대한 무
                                                                                                                           력감이 강화되자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고니시는 군종신부를 모셔오게 되는데, 그가

                                                                                                                           바로 스페인 사람인 예수회 소속의 세스페데스 신부였다. 그는 1593년 성탄절을 전후
                                                                                                                           하여 웅천에 상륙하게 되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웅천을 거점으로 부산, 동래, 기장까지 다니며 1년 6개월 동안 사
                                                                                                                           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웅천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 400여 년 전의 일이고

                                                                                                                           그가 이 땅에 들어온 첫 사제이며 또한 웅천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봉헌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웅천은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성지임에 틀림없다.

                                                                                                                             한편 세스페데스 신부는 조선에서의 인연으로 일본에 잡혀와 있던 포로들에게도 전
                                                                                                                           교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현재 일본의 순교복자 205위 가운데는 조선인 아홉 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세스페데스 신부의 전교활동에 의해 예수회 수사가 되
                                                                                                                           어 일본에서 순교한 권 원선시오 수사이다. 이는 세스페데스 신부의 역할이 얼마나 컸

               1. 우리나라에서의 첫 미사 - 진해 웅천 남산성                                                                                 는지 알 수 있는 일례이다.
                                                                                                                                                                        일본의 침입은 1597년 도요토미 히

              진해는 원래 웅천군의 일부였다. 1908년 웅천군이 창원군에 흡수됨에 따라 창원군에                                                                                                          데요시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고 뒤를
            속했다가 1910년 마산부제 실시에 따라 마산부에 편입되어 진해면으로 불리웠다. 1931                                                                                                         이어받는 사람이 도구가와 이에야스

            년에 진해읍으로, 1955년 진해시로, 2010년 7월 1일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창원시                                                                                                      였는데 그 역시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로 통합되면서 진해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한편 세스페데스 신부의 후원자였던

              웅천의 남산성은 조선 땅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봉헌된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고니시 유끼나가는 이에야스에 의해
            일어나자 고니시 유끼나가 제1진으로 1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왔는데 그는 천주교                                                                                                           실각되어 사망하였고 이후 일본의 천
                                                                                                                                          세스페데스 공원
            신자였다. 당시 일본의 실력가는 도요토미                                                                                                                                    주교는 남쪽의 규우슈 지방에서 명맥
            히데요시였는데 대권을 장악한 뒤 그는 천                                                                                         을 이어왔고 세스페데스 신부도 나가사끼에서 사망하였다.

            주교를 박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진해는 부산 다음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였던 지역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보다
            연유로 조선 침략의 1진으로 온 병사들의                                                                                         그들의 국가종교인 신사참배가 강요되었던 곳이었다. 더구나 일본은 종교와 사상의 자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                                                                                             유를 억압하는 한 방법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신앙이 뿌리 내린다
              임진왜란은 명나라의 개입과 이순신 장                                                                                         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진해지역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데 결

            군의 활약으로 벽에 부딪치게 되었고 급기                                  웅천 왜성                                                  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일본인 신자였던 요셉 스스미라는 일본인 부부였다. 전해오





            56  덕산성당 25주년 발자취                                                                                                                                                       제2부. 본당의 역사 및 특징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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