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0 - 덕산성당 25년 발자취
P. 180
지도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삶의 무게가 힘겨워 흘린 눈물도 아니며 죄악 신앙수기
에 대한 통한과 참회의 눈물만도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은, 누구에게
도 단 한 번 고백할 수 없었던 주님 부활의 의구심에 대한 죄송함을 감당할 수 없었기 나를
에 그분께 봉헌한 눈물이었다! 그 순간 ‘번쩍이는 섬광’을 보고 나는 엄청난 전율을 느 누구라고 하느냐?
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가슴엔 기쁨과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주님
께서는 당신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성묘경당의 미사에서 한줄기 ‘번쩍이는 섬광’을 통하
여 나의 회의를 일소시켜 주시고 나의 영혼을 씻어 주셨다! 미사가 끝나고 주님무덤성
당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참으로 가벼웠고 감사와 환희로 모든 것이 평화롭게 보였다. 권현애 로마나
이어지는 순례의 여정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성당 중의 하나로 볼세
냐에서 있었던 성체성혈의 기적을 기념하여 건립된 오르비에토 대성당에 당도했다. 볼
세냐의 기적, 성체성혈의 성체포가 모셔져 있는 경당에서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성체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사제가 ‘그리스도 몸’ 하며 내 손위에 놓아준 성체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보았다!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현기증을 가까스로 수습하며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분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분은 이렇게 나의 하느님 아버
자리에 돌아온 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흘러내렸다. 감사와 죄송함이 교차하는 시간 지가 되었다.
이었다. 이윽고 주님의 현존과 생명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았 부모님께서 하느님과의 약속에 최선을 다하셨기에 공식적으로는 그 날부터 지금까
다. 주님께서는 호통도 꾸짖으심도 없이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그 순간 나 지 함께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를 억누르는 회의와 의구심의 속박에서 나는 벗어나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 자유와 희 어린 시절에는 주일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그 날이 싫은 철부
열이 공존하는 시간을 맞이했다. 지였다. 눈부시고 아름답던 청년의 시간에도 누군가의 청함에 거절 못하고 교회 속에
성지순례의 여정 중, 죽음이 생명으로 변모된 부활의 현장인 예루살렘 성묘경당과 서 해야 한다는 위험한 사명감으로 하느님 곁에 맴돌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
성체성혈 기적의 상징인 성체포를 모시고 있는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미사에서 나는 놀 우면서 냉담기에 접어들었다. 쉼 속에도 ‘조금만 더 쉬고 갈게요’라는 화살을 쏘아 대며
라운 은총을 충만히 받았다. 주님께서는 나의 얼룩진 상처, 회의와 의구심과 고뇌를 말 조금은 뻔뻔한 시절을 보냈다.
끔히 씻어주시고 그곳에 당신의 참 평화를 안겨 주셨다! 막혔던 모든 것이 뚫려 소통하 그리고 더 이상은 쉴 수 없는 큰 아이의 첫 영성체를 앞두고 나는 돌아왔다. 다시 돌
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드라마틱한 성지순례의 은총을 가슴에 새기며 미사에 몰 아온 나는 지금 불혹의 나이 대를 살아가면서 한없이 기다려준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
입하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을 돌리며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가 주님께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주님, 사랑합니다. 아멘. 나의 모든 시간 속에 함께하고 계신 그 분의 1년에 한 번은 복음으로 찾아오는 그 질
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슬펐다.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하는 베드로를 보
178 덕산성당 25주년 발자취 제4부. 공동체의 아름다운 향기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