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덕산성당 25년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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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삶이 얼굴 표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신앙수기
저녁 시간, 수도자들의 식사시간은 엄숙하고 긴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달
리 부드럽고 따뜻했다. 뭔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많은 것을 버렸으면서도 모든 것
할머니의 유산
을 다 가진 그들의 내면세계가 그대로 베어 나온 듯 따뜻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절제되
(유난수 데레사 할머니를 추억하며)
고 정제된 삶이 잘 정돈된 모습으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손을 모으고 작별인사 하시는 원장 신부님의 모습이 참 곱
다. 신세를 진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는데 자꾸만 우리보고 고맙다고 하신다. 인사하시
는 모습에서 조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과 후덕함이 엿보인다. 내 것만 고집하 정선경 아가다
는 내 마음이 찌릿해 옴을 느낀다.
짧았지만 평소에 가질 수 없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오늘 이 마음 이대
로 늘 주님과 동행하기를 바라며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뇌어 본다.
‘그냥, 그냥 머무르는 거야.’
“할머니 기도하는거야? 텔레비전 보는거야?”
“기도하는 거지.”
언제나 할머니의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할머니의 기
도, 그런 할머니를 놀려먹는 게 우리들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선경아, 이 글자가 이게 뭐냐?”
“할머니는 글자도 몰라요?”
“그려. 그래도 다 살아. 그런데 기도를 하려면 글자를 배워야 해.”
할머니는 기도를 하기 위해 글자를 배우셨다. 기도서가 너덜너덜해지고 묵주의 쇠줄
이 닳아서 끊어질 때까지 하셨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관에는 할머니가 마지막에 쓰시던 7단 묵주가
같이 들어갔다. 할머니의 수의 프란치스코 재속 삼회 수도복을 입으시고.
할머니는 항상 내가 죽으면 이 옷을 입혀달라고 하시며, 그 갈색의 수도복을 소중히
간직하셨다.
덕산성당 최초로 치러진 레지오장. 그 미사는 상당히 성대해 보였다. 덕산성당의 모
든 쁘레시디움 깃발이 늘어서 마치 사열하는 듯한 분위기. 사람들은 성대한 장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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