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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성인 : 성녀 모니카 

모니카 성녀 축일 : 8월 27일


  성녀 모니카의 평소 환경은 잔소리가 심한 아내, 모진 며느리, 절망적인 부모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 같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들은 그리스도교인이었던 그녀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 있는 그녀 집에서 함께 살던 이교도인 파트리치오와 결혼을 시켰다.  파트리치오는 격렬한 성격에 방탕하기까지 했으나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니카는 심술 궂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모니카의 기도와 모범은 마침내 그녀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그리스도교에 귀의시켰다. 그녀의 남편은 영세한 지 1년 후인 37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모니카에게는 유년기를 넘긴 세 자녀가 있었다.  그 중 맏이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장 유명하다.
파트리치오가 운명할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17세였으며, 카르타고의 수사학 학생이었다.

  모니카는 자기 아들이 마니교도가 되어 비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슬퍼했다.  얼마 동안 아들이 집에서 먹고 잠자는 것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아들이 신앙을 되찾는 확실한 환상을 보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아들 가까이에 머물렀다.

   사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원하는 것보다 휠씬 가까이에 머물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29세에 로마로 수사학을 공부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도 함께 가기로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어머니에게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러 선창에 간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로마로 가는 배를 탔다.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계교를 알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밀라노를 향해 떠났음을 알았다. 비록 여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니카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로 갔다.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니카의 영적 지도자였던 성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모든 일에 있어 그의 충고를 따랐고 그녀의 제2 본성이 되어 있던 몇 가지 행동을 포기하는 겸손을 가졌다.  모니카는 타가스테에 있었을 때와 같이 밀라노에서 신심 깊은 부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아우구티누스를 위해 기도했다.

  387년 부활절에 성암브로시오는 아우구티누스와 그의 친구 몇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얼마 후 아우구티누스와 모니카는 아프리카로 떠났다. 비록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모니카는 자신의 삶이 곧 끝날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아우구티누스에게 "얘야, 이 세상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지금 내게 남겨진 일이 무엇이며, 왜 내가 아직도 이 지상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 세상에서 나의 모든 희망이 다 이루어졌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곧 병이 들었고, 죽기 전 9일 동안은 심하게 고통을 받았다.

  우리가 모니카에 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아우구티누스가 쓴 고백록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