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영성체 예식

by 홍보분과 posted Jan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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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 영성체 예식 (1)

 

 

영성체 예식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영성체 예식은 축성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며 주님과 하나 되고 신자들과도 한 몸을 이루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의 라틴어 명칭 ‘꼼무니오(communio)’는 공동 참여, 함께 나눔 등을 뜻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거나 이에 함께 참여함을 뜻하지요. 바오로 사도도 영성체 예식을 ‘그리스도의 피와 맺는 친교’ 또는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1코린 10,16 참조)라고 했습니다.

 

이 친교는 단순한 일치를 넘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놓은 주님과 인격적으로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도 일부 부유한 신자들이 먹을 것을 장만해 오지 못하는 가난한 신자들을 외면하고 자기네끼리만 식사를 하는 코린토 교회의 관행을 꾸짖었습니다(1코린 11,20-22 참조). 또한, 교우들이 경건하게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실 준비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했습니다. “각 사람은 먼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8).

 

 

영성체 예식은 왜 ‘주님의 기도’로 시작하나요?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마태 6,9-13 참조)로, 초대 교회 때부터 전례나 개인기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답니다. 세례 성사를 받은 모든 교우들은 날마다 세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는 가르침을 받았지요. 교부들도 주님의 기도 안에 들어있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표현을 일상생활에 필요한 양식 이외에도 성체와 연결시켜 묵상하기도 했답니다. 이러한 교회의 전통 안에서 주님의 기도는 가장 적합한 영성체 준비기도로 간주되었고 4세기경 동·서방 미사전례에 모두 도입되었답니다. 성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240)도 말했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청을 영성적으로 알아들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고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구절도 합당한 영성체를 위한 훌륭한 간구로 여겨졌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와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구절 또한, 끊임없이 악의 유혹을 받고 죄를 지을 위험을 안고 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간구입니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영성체 준비기도이며 성체를 영하는 모든 예식(환자 영성체, 병자성사, 노자성체)을 위한 핵심적인 준비기도가 됩니다.

 

 

‘주님의 기도’에 이어 사제가 바치는 기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주님의 기도 후에, 사제는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악에서 구하소서’를 이어받아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로 시작되는 기도이지요. 인간은 마지막 날까지 하느님이 알려주시는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시련과 혼란을 겪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사제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특별한 보호와 은총을 다시 한 번 간구합니다. 한평생 평화롭게 해 달라고 청하며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한 희망을 안고 세상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사제의 기도는 이렇게 주님의 기도에 연결되어 있기에 부속기도(Embolismus)라는 명칭으로도 부릅니다. 이 기도의 마지막은 주요 기도의 마지막을 영광송으로 끝맺는 교회의 전례전통에 따라 영광송으로 마무리합니다.

 

 

영성체하기 전 평화의 예식은 무엇을 기원하나요?

 

영성체 전에 이웃과의 화해와 평화를 표시하는 평화 예식은 이미 2세기경부터 미사전례에서 행해졌습니다. 평화의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이룩하신 평화를 청하고 있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과 부활 후에 알려주신 인사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샬롬, Shalom)는 단순히 전쟁이나 투쟁이 없는 그런 평화를 뜻하지 않습니다.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수난과 부활로 완성하신 그 구원에서 흘러나오는 평화, 하느님과 인간 또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를 했으며 교우들은 사랑과 화해의 표시로 서로 입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예식은 교우 상호간에 진정한 사랑과 화해의 표시가 되는 기쁨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참고 문헌

 

「왜 저렇게 하지? 전례의 표징」 (김종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미사 전례」(이홍기, 분도출판사)

「미사참례 하는 사람들의 일상 살기」(도미니그라시·조파프로키 공저,  가톨릭출판사)

 

[나눔의 소공동체, 2018년 1월호,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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