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보[카톨릭마산] 연중20주일 최봉원주임신부 강론 원본

by 홍보분과 posted Aug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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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원 야고보 주임신부님 [교구보(카톨릭마산) 연중20주일 강론] 

원본을 게시합니다.

 

20일강론.png

 

연중 제 20주일

 

 

 

독서 예레 38, 4-6, 8-0 대신들이 예레미야를 고발해왔다.

히브 12, 1-4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복음 루카 12, 49-53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불과 칼을 주러 오신 예수

   

 

   예수님은 오늘 루카 12.49에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시고, 12.51에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 하셨다. 이 내용을 마태 10.34에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셨다

   평화가 아니라 불을 지르고 칼을 휘두르는 예수님을 생각해 보자!

   그 모습은 어울리지도 이해도 잘 안 된다. 예수님은 마태 5,9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고, 부활 후 제자들에게 늘 평화의 인사를 하셨다. 또 바오로 사도는 에페 2,14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사 중 영성체 전에 항상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그렇다면 사실 예수님이야말로 평화의 주인공이지 않으신가?

   먼저 우리는 평화의 의미를 알아야겠다.

   보통 평화라고 하면 전쟁이나 분쟁 따위의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참 평화는 이런 외적인 안정은 물론, 내적으로 정의가 구현되고 연생에 대한 확신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평화는 이러한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 14,27에서 당신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는 시작되었고, 은 유대인들에게 심판의 상징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이 불로 태우고 칼로 자르려고 하신 것은 이런 참 평화실현에 방해되는 요소들이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불을 지펴야 한다. 그 불은 어떤 불인가? 바로 그 불은 성령의 불이다. 이 성령의 불로 참 평화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무사안일과 나태, 불신풍조와 이기주의 같은 것들을 모두 태워 없애야 한다.

   또 우리는 칼질을 해야 한다. 그 칼은 어떤 칼인가? 마찬가지로 그 칼은 성령의 칼이다.

성령의 칼로 참 평화실현에 장애가 되는 마귀와 우상숭배, 미신적인 허례허식같은 세속주의를 잘라내고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정의 구현의 삶을 살려고 하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반대자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또 인생의 목적이 저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이라고 믿고 살려고 하면, 하느님을 부정하는 세속주의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뜻이 다른 가족들과 충돌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 창립 직후인 1785년에 지금의 명동 성당이 자리한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다가 체포된 일이 있었다. 참석자 중 이벽 세례자 요한, 이승훈 베드로, 정약용 요한 등 양반들은 훈방되었으나 장소를 제공한 중인 신분의 김범우는 밀양 단장면으로 유배되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을사추조적발 사건이라 한다. 이렇게 되니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서는 가족 간의 갈등과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이때 천주교 창립의 선구자였던 이벽의 아버지는 아들을 배교시키기 위해 목매어 자살하려고까지 했다. 이것을 접한 이벽은 부모를 죽게 할 수도 없고, 하느님을 배반할 수도 없는 심각한 갈등 속에서 방에 갇혀 살다가 이듬해 병사했다.

   또 103순위 순교 성인 중 13살 유대철 베드로는 아버지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를 본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패가망신한다며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천주교를 믿으면 죽으니 믿지 말라고 했다. 그때 유대철 베드로는 어머니 말씀도 맞지만 어머니 말씀보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아버지의 말씀보다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어머니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참 평화실현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태우느냐 마느냐, 잘라내느냐 그냥 내버려두느냐의 선택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평화를 실현하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성령의 불과 칼로 태울 것은 태우고, 자를 것은 잘라내야 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러한 아픔들 속에서도 100여 년 동안 박해를 받았고, 신자들은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실현을 위해 장렬히 순교를 했다. 그 결과 교회는 꿋꿋하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자 여러분!

   우리는 늘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실현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속은 이러한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참 평화는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늘 1독서의 예레미야처럼 많은 예언자들도 참 평화실현을 위해 살다가 반대자들의 박해를 받았다. 평화를 주인공이신 예수님도 수난하고 죽음까지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살아가면서 언제나 어디에서나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예리한 칼날이 되게 해야겠다. 그리하여 우리도 부서지고 쪼개지는 아픔을 감수하면서라도, 참 평화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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