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 성녀 클라라

by 김종복(요셉) posted Aug 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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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 성녀 클라라

    아시시! 그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종교와 이념, 민족과 빈부의 벽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진리와 선, 사랑과 평화를 구현하고 있는 축복의 땅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푸른 심장'으로 불리는 아시시는 성 프란치스코(1182~1226)와 성녀 클라라(1194~1253)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푸른 밀밭의 목가적(牧歌的)전원과 산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 페루자의 작은 구릉지에 자리 잡은 아시시는 중세 도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수년 전 이태리 성지순례 중 아시시에 들렀을 때, 엷은 흥분과 긴장

   속에서도 경건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어제인양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던 중, 양상국 신부님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관구장)의 아래 글을 읽고 함께 나누고자 인용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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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 성녀 클라라

   클라라 성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분 계십니다. 가난과 겸손의 성인이자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십니다. 그가 지녔던 인간적 성품,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 그가 소요했던

   신앙과 삶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당대 수많은 청년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고자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녀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이 주도한 가난을 통한 영적 쇄신 운동에 흠뻑 매료된 그녀 역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귀족 가정 출신 자녀로서의 풍요와 특권도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깜짝 놀란 금액의 상속 재산도 자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출가 이후 클라라는 프란치스코가 제시한 영정 여정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충실히 따랐습니다.

   클라라의 영성은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동일합니다. 가난과 겸손은 사랑입니다.

   그녀가 자주 강조한 겻은 그냥 가난이 아니라 겸손과 함께하는 가난, 그리고 가난과 함께하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녀의 생애 안에서 가난과 겸손은 다정하게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 안에서 이루어진 철저한 겸손과 가난의

   실천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클라라의 삶이 스승 프란치스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봉쇄구역 안에서 프란치스코 영성에 따라

   관상 수도생활을 해나간 것입니다. 그녀가 평생토록 관상 수녀회 안에서 끊임없이 바라본 것은 프란치스코가

   바라본 것과  동일합니다. 곧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동시에 성체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복사판 프란치스코’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또는‘제2의 프란치스코의 여성적 얼굴’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일컬어

   ‘복되신 스승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즐겨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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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적인 겸손과 빛나는 가난의 성녀 클라라

   영웅적인 겸손과 빛나는 가난의 성녀 클라라 다른 무엇에 앞서 클라라는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다미아노 성당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당시 아시시의 교구장이셨던 귀도 주교님께서는

   극구 사양하는 그녀를 수녀원장에 임명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 직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녀원장인 그녀였지만 수녀원의 허드렛일은 당연히 자신의 일이러니 생각하고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며 기쁘게

   해나갔습니다. 그녀가 유독 좋아하던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동료 수녀들이 식사할 때‘서빙’하는 일이었습니다.

   밭일을 끝내고 흙먼지 투성이의 발로 들어오는 동료 수녀들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발을 다 씻긴 그녀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재빨리 수녀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클라라의 잠자리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바닥이었습니다. 냇가에서 주어온 돌이 베개였습니다.

   작디작은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이 매 끼니 식사였습니다. 실내장식이나 난방은 고사하고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누추한 거처에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무엇인지, 추위에 떤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피로에 지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온몸과 마음으로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성 보나벤투리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정원에 핀 첫 꽃송이로서

   마치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희고도 순수한 봄꽃과도 같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 프란치스코의 딸이었으며 가난한 클라라회의 창설자였습니다.”

 

   클라라는 한평생 봉쇄구역 안에서의 관상생활에 전념하였지만, 자신의 삶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서한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늘 아래서 내가 바랐던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그 기쁨을 이미 소유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도 주님 안에서 늘 즐거워하며, 슬픔이나 우울이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영원 거울 앞에 놓으십시오. 그대의 영원을 영광의 광채 속에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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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다미아노 성당이 있던 자리에 ‘다미아노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

              이곳은 프란치스코가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치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던 곳으로,

             작은 형제회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그는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회의 쇄신과

      청빈을 강조하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데 매진했다. 성인의 동반자였던 클라라(1194~1253년)가

          수도생활을 할 수 있게 그곳에 수도원을 만들어 주었는데, 오늘날에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2의 마리아, 클라라

   클라라의 생애는 한마디로 성모님의 생애의 복사판이었습니다.

   회심, 그리고 출가 이후 그녀가 일관되게 유지한 삶의 모습은 성모님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주님의 여종! 그녀는 자신의 인생 여정의 롤 모델로 성모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클라라는 동정녀이신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정배로서, 지존하신 하느님의

   충실한 딸이자 겸손한 종으로서 살아가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나자렛의 마리아가 만삭인 엘리사벳을 찾아가 봉사하였듯이 클라라는

   겸손한 여종의 모습으로 동료 수녀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때로 인정 많은 어머니처럼, 때로 친절한 친누이처럼 동료 수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가난하지만 찬란한 여인의 신앙 여정을 충실히 동반해주셨고,

   그녀가 계획했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평생에 걸쳐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프란치스코를 향해 제2의 그리스도라고 칭했습니다.

   그녀 역시 제2의 마리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클라라는 프라하의 공주 아녜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자신의 각별한 성모신심을 표현했습니다.

   “감미로운 성모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늘도 담을 수 없는

   위대하신 주님을 작지만 거룩하신 당신의 태중에 품으셨습니다.

   그대도 성모님의 발자취를, 특히 그분의 겸손과 가난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의 순결한 몸 안에 주님을 항상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클라라 성녀의 시성 절차 증인으로 출석한 한 동료 수녀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지상에서부터 제2의 마리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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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세상을 하직할 순간이 다가오자 성모님께 남겨질 자매들을 보호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했습니다    .

   이에 성모님께서 기쁘게 응답하셨답니다. 선종하기 사흘 전, 그분께서는 거룩한 동정녀들의

   무리와 함께 내려오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흰 베일로 그녀의 몸을 덮고 친구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녀를 향해 몸을 굽히는 순가 두 분의 얼굴이 합쳐지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두 분의 얼굴이 너무나 닮아 구별할 수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렇게 클라라의 얼굴은 성모님의 거울이었습니다.

   평생에 걸친 클라라의 삶은 빛으로 충만한 성모님 삶의 반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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