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위령성월의 단상(斷想)

by 김종복(요셉) posted Nov 29,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3, 위령성월의 단상(斷想)

시간의 흐름은 자신의 나이와 같은 속도로 질주 하는 것 같습니다.

겨우내 앙상하게 메말랐던 초목이 연두 빛 여린 잎을 내밀던

생동(生動)의 봄은 곧장 지나가고, 세찬 장맛비와 폭염의

상처를 남긴 성하(盛夏)도 어느 순간 지나갔습니다.

추수가 끝나 고즈넉한 들판은 황량(荒凉)하기 그지없지만

그 지리를 지키고 있는 그루터기를 애잔하게 바라보며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기도하게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황혼의 저녁노을과 마주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곧게 뻗어 흘러가는 냇물보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더 정겨워 보이고,

탄탄대로 보다 산 따라 물길 따라 돌아가는 길이 더 아름답듯 최선을

다하는 사람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철학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찾고

종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모르지만 그분께서

부르시면 언재든 본향(本鄕)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광명정대(光明正大)한 햇빛도 중요하지만 은은한 달빛도

필요 하다는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신앙의 연륜으로만 본다면 나 자신도 내공이 차곡차곡 쌓여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은 의연(毅然)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뾰쪽하고 모난 곳은 깎이지 않고,

움푹 패인 곳도 매끄럽게 메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까칠한 성깔도 온유한 마음으로 변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토()하며 2023년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예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돌계단이 돌부처에게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똑같이 돌로 만들었는데 왜 사람들은

나는 밟고 다니고, 당신에게는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것이요?”

그러자 돌부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그동안 돌부처가 되기까지 수도 없이

정과 망치를 얼마나 맞았는지 아시오?”

수도 없이 정과 망치질이 있었기에 오늘의

부처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고난을 겪은 만큼 위대해지는 법이라고.

나이가 들어가면 좋지 않은 것이 많아지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견뎌내야 할 고통도 만만치 않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깨달음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무한한 줄만 알았던 시간이 유한(有限)하다는 사실과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는 추억 속에 맴돌던 이루지 못한 과거의 꿈을 접으며

남은 삶이 잘 영글어 갈 수 있도록 자아(自我)를 비우고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겸손하게 그분께 다가섭니다.

 

노년은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길이며 삶의

여정에서 마음을 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나이 입니다

행복은 마음으로 만들고 천국은 가슴에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며,

마음을 비울 수 있기에 더 많은 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삶은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나누고

배려하며 익어가는 노년의 아름다운 삶은 존경받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세파(世波)와 존재의 무게에 억눌린 나그네 여정이지만,

하느님께서 베푸신 큰 자비로 내 삶이 가치가 있음을 내 삶이

시간과 공간에 휩싸여 허무하게 지나가는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깨닫습니다.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에는 결코 생각하지도 보이지도

않은 것들이 이제는 하나 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하늘아래 별일들이 다 생기지.’라고 중얼거리며

조금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봅니다.

 

내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연령회 봉사를 하면서 많은 죽음을 만나고 그분들을 배웅했지만

익숙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죽음과 결별(訣別)하는 것입니다.

죽음과 결별은 낯설 뿐만 아니라 고통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새색시가 어린 아이를 안고 쩔쩔매듯 죽음과 결별을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자신을 황망(慌忙)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와 영원히 이별 한다는 것은 자갈밭에

넘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육신과 영혼이 쓰라리며 저려올 것입니다.

나그네 여정의 종착역이라 불리는 죽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잠시

지녔던 모든 것들을 다시 이 세상에 돌려주고 떠남을 의미합니다.

죽음이 두렵다는 것은 눈을 감은 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미지의

세계, 곧 내세(來世)에 대한 불안한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은 황혼기를 맞은 한 인간에게 나그네 여정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지 고심(苦心)을 주는 잔인한 스승이기도 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소중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 뒤늦게 가르쳐 주는 무심한 선생님입니다.

세상에서 용서 못 할 것이 없고 해결 못 할 것이 없음을 보여 주며,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을 새삼 깨우쳐 주는 또 다른 스승입니다.

 

성경에 백발은영광의 면류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언 16,31). 세월을 거스를 수 없어 육신은 노쇠(老衰)하지만

살아온 연륜만큼 삶에 대한 사고가 풍성하고 믿음의 세월만큼

익어가는 노년의 고결한 신앙은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감성도 창의력도 갖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의 사고방식과 오해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부류는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신앙의 완성 단계를 걷는 노년의 몫이 아닐까요.

육신의 늙음이 영혼까지 메마르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노년이야 말로

자신의 신앙을 열매 맺어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관념(觀念)이 아닌 실천이며,

생각이 아닌 삶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2023,11,29 -

 

 

 

 


Article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