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후기(後記)

by 김종복(요셉) posted Jul 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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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옙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후기(後記)>>

 호국보훈(護國報勳)을 기리는 6월이 시작되던 날, 신과 종교, 삶과 죽음, 사랑과 욕정, 인간 본성의 문제를 탐구한 대서사시라 칭송받는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손에 들었다. 도스토옙스키 사회주의 성향을 띤 모임에 출입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그의 나이 28세 떼의 일이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니콜라이 1세 황제의 사면으로 사형 집행이 극적으로 정지되었다. 이후 4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다시 4년은 일개 사병의 신분으로 시베리아 부대에서 보냈다. 감옥에 있던 시절 그가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이 성경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8년에 걸친 유형 생활이후 도스토옙스키는 그야말로 극우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초기에는 거의 쓰지 않았던 신(그리스도)이 화두로 등장하게 되고, 이후에 나오는 모든 장편들이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심리적, 철학적 차원을 넘어 윤리적, 종교적으로 이월되는 것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필로그는 마치 미래에 대한 예언서처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김연경씨가 번역한(민음사)‘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활자는 거의 깨알 같은 크기에 각각 600여 쪽에 달하는 3권으로 모두 1,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소재의 극단성과 구성상의 긴장감 덕분이었다. 부자(父子)간의 재산 다툼과 여자 다툼, 형제간의 반목이 친부 살해로 현실화되는 것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무대는 러시아의 소도시. 지난 시절 사업가이자 이 지방 도시의 지주(地主)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거의 천재적인 어릿광대일뿐더러 탐욕과 이기주의와 방탕과 욕정을 쫓으며 평생을 살아온 호색한(好色漢)이다. 그에게는 장남 "드미트리'(첫 번째 부인), 차남 '이반', 삼남 '알렉세이'(둘 째 부인)가 있었으나 처음부터 나 몰라라 했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을의 백치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이 집의 젊은 하인 '스메르자코프'도 그의 아들로 추정된다.

 

어느 날 20여 년 만에 그의 집에 세 아들이 아버지 표도르(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를 찾아왔다. 그들은 혈육으로서 형제적 애정에서라기보다 갖자 다른 목적을 갖고 아버지 표도르를 찾아온 것이다. 장남 드미트리는 약혼녀가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재산 문제를 담판 지으려 왔다가 아버지 표도르가 오래전부터 점찍어 놓은 여자(그루센카)에게 반하면서 일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루센카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부자(父子)의 애만 태울 뿐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둘째 아들 이반도 형의 약혼자(카체리나)를 사랑하게 된다. 수도원에 살고 있는 셋째 아들 알렉세이는 신실하고 어진 청년으로, 이런 아버지와 형들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장남 드미트리는 공공연하게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고 하고, 차남 이반 역시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마음속에서 커져 감을 느낀다. 결국 탐욕과 분노가 절정에 이른 어느 밤에 표도르는 살해된 채 발견된다.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인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열독(熱讀)하던 중 그가 평생 동안 고민하고 작품 속에서 그려 왔던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대한 문학적, 철학적, 신학적 정수가 집약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이 소설의 비극적 파국의 토대는 삼각관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에서 남녀의 사랑의 심리와 인간관계의 내적 모순 및 갈등의 원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방탕하고 변덕이 심한 아름다운 탕녀 그루셴카와의 사랑을 둘러싼 아버지 표도르와 장남 드미트리와의 욕정과 돈 문제가 뒤얽힌 다툼이 그것이다. 결국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중에 사생아인 스메르댜코프가 둘째 아들 이반의 사주를 받고 부친인 표도르를 살해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증오하던 드미트리가 피고가 되어 재판장에 서고, 판사의 오판으로 시베리아 유형 선고를 받는다. 사실 부친 살해 선고는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를 사주한 둘째 아들 이반이 받아야 마땅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탐욕스러운 피가 지적(知的)으로 구현된 인물인 이반은 무용한 아버지의 제거를 당위적인 것으로 여기고, 사생아인 동생 스메르자코프에게 이를 주입시켰던 것이다. 모스크바의 최고학부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는 극단적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작가의 결론은 고뇌와 사랑과 희생에 의해서 갱생과 진정한 자유로 이끄는 진실한 그리스도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 정신은 조시마장로로 표상되고, 이러한 신앙이 삼남 알료샤에 의해 구현되어 갈 예정이었다. 온갖 허위와 무모한 정열과 무신론, 죄악에 물들어 신의 법에 거역하는 사람들의 파멸로 귀결되는 이 소설 말미에서 알료샤는 약자와 어린이를 사랑하고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친부 살해 사건의 공판에서 검사가(페추코비치)피고 드미트리를 신문하면서 배심원에게 말한 단락을 소개하면, “배심원 여러분! 저는 이곳의 아버지들만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아버지를 향해 외칩니다.‘아버지들이여, 자신의 아이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그러니까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성약(聖約)을 이행한 후, 그다음에 비로소 우리 아이들에게 감히 뭔가를 요구하든지 합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원수이며, 그들 또한 우리들의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니, 그것도 우리 자신이 제 손으로 그들을 원수로 만드는 것입니다.‘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너희도 되어서 받을 것이다.’이건 이미 제 말이 아니고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우리한테서 받은 만큼 우리에게 되어서 준다고 한들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배심원 여러분!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절제를 요구하지 맙시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특히 자기 동년배인 아이들의 훌륭한 아버지들과 비교하다 보면,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란 틀에 박힌 것이어서 '아버지가 너를 낳았다. 너는 아버지의 혈육이다. 그러니까 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낳을 때 나를 사랑했을까?' 하고 자녀는 반사적으로 의문을 품습니다. -중략- ‘천성이란 문 밖으로 쫓아내면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무엇보다도 금속'유황불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신비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성과 박애가 일러 주는 것에 따라 물음을 해결합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이 아버지 앞에 서서 당사자인 아버지한테 직접 명민(明敏)하게 묻는 겁니다. '아버지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까?' 그때 만일 그 아버지가 아들의 물음에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비주의적 편견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자명한, 엄격하게 인도주의적 기초 위에 세워진 진정으로 정상적인 가족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 가족은 곧 끝장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소설이자 그의 사상의 집대성이며 세계 문학에 우뚝 솟은 고전으로서 치밀한 구성과 심오한 사상,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평가 받은 도스토옙스키, 그는 과연 잔인한 천재(?)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표면적 이야기는 카라마조프 가문의 불행하고 비극적인 연대기이지만 이 범속한 가정사의 이면에는 인간 영혼의 무한한 다양성과 존재론적 의문, 인간 욕망과 도덕률의 충돌, 신과 인간의 관계 등 작가의 깊은 내면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덧붙임-

60(1821-1881)에 이르는 도스토옙스키의 삶은 자신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사건들로 가득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작가는 모스크바 빈민병원의 군의관이자 모스크바 인근에 작은 영지를 소유한(소지주)'안드레예비치 도스토옙스'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슬하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 점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방대한 영지를 소유했던 귀족 작가 톨스토이(1883-1945)와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그는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거의 없었기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 작품을 쓰는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0대 후반에 아버지 영지의 농노들에 의해 피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사상적인 문제로 사형선고를 받고 극적인 사면으로 집행은 면했지만 8년에 걸친 유형 생활을 했다.

 

그의 아내 '마리야 이사예바'가 폐병으로 사망 한 그해 6월 친형이자 출판업 동업자였던 미하일도 갑자기 사망했다. 잘못된 계약으로 급히 소설을 완성해야 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를 고용하여 도박사, 죄와 벌을 완성 후. 자신이 고용한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아내 안나 스니트키나는 작가의 마지막 날까지 든든한 옆지기로 남았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도스토옙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둠으로 파란만장 그의 삶도 멈추었다. 장례식(1881, 2,1)을 찾은 6만 여 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티흐빈 묘지에서 안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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