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다가온 아련한 추억

by 김종복(요셉) posted Dec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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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밑에 다가온 아련한 추억  

땅거미 깔리듯 한해가 저물어 간다. 

삭풍에 옷깃을 여미는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무수한 별들이 서로 만나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이며 '인연'이다.
영겁(永劫)의 시선으로 보면 생(生)과 멸(滅)은 모두 한갓 찰나(刹那)의 일념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향해 반짝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밤하늘에서 인연의 빛을 밝혀 나를 반짝이게 해 준 사람들과 삼라만상(森羅萬象)에게도 

고맙고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데 시간은 어느덧 섣달그믐에 서 있다.

세밑이라는 언덕에 서서 한해를 돌아보니 우왕좌왕 분주했고 여러 일들도 많았다.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손에 쥔 것은 무엇 하나 내세울 것도 없지만,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세밑에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은 추억이 되어 밀물처럼 가슴을 헤집고 들어온다.

그들과 함께 노주(老酒)를 나누고 '희망가'를 부르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희망가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春夢)되어 또 다시 꿈같다.'
숱한 인생사를 겪으며 삶의 터전을 지킨 사람이면, 술 한 잔 거나하게 취해
신세 한탄하며 부르기 딱 좋은 노래처럼 들린다.
인간사에 두 다리 쭉 뻗을 수 있는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어디에 있겠는가?
앞서 언급한 '희망가'의 원곡은 영국 댄스곡을 바탕으로 한 미국 찬송가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제목과 가사가 바뀌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서 지금의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이미 등 뒤에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 토끼 해가 서 있다.
그래서 일까, 평소보다 더더욱 소중한 이들에게 심연(深淵)에 간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모든 아쉬움을 뒤로 젖히고 남은 시간을 차분하게 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해야겠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점령군처럼 밀려든 황혼에 속천만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노을의 속천만이 베일에 싸인 듯 가깝고도 멀어지며 애잔하게 다가온다.
여명(黎明)을 밝히며 솟아오르는 아침의 찬란한 태양보다 서산에 지는  
황혼의 노을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황혼의 노을에는 형용키 어려운 형형색색의 조화와 한 낮을 잘 
마무리하였다는 고운 뒷모습의 여운(餘韻)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인은 '낙조는 가슴을 여는 감동이 있고 분노와 배신감을 다스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속천만의 황혼의 자태에 도취(陶醉)되어 시선은 흐릿해지는데,
반세기가 훨씬 지난 국민(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물안개처럼 희미하게 펼쳐진다.


어린 시절 내 고향은 읍내와 면사무소도 2-3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지라고 할 수 있는 범실이라는 곳에는 10여 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곳에 어느 문중(門衆)의 소유인지는 모르지만 제법 규모가 큰 제각(祭閣)과 잔디가 있는 뜰이며
입구를 버티고 있는 솟을대문과 담장은 국민학교 6학년의 내 눈에는 성곽(城郭)처럼 보였다.
그해 어버이날에는 그곳 제각에서 학부모를 모시고 행사의 하나로 연극 공연이 있었다.
당시는 그런 행사를 학예회(學藝會)라고 했는데 연극 제목은 '마음의 꽃씨' 였고,
그 연극에서 나는 임금 역할을 맡았다.
함께 햤던 다른 친구들은 기억이 없지만 신하역은 죽마고우인 친구였고,
착한 소년의 역할은 여학생으로 후에 두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나는 군인의 길을 걸었다.

 

연극 내용은 이러했다.
옛날 어떤 임금이 마을 사람들에게 꽃 씨앗을 나눠 주면서
'누구든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오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임금이 나누어준 씨앗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가 심고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마침내 임금이 마을로 와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은 꽃을 피운 화분을 들고 와서 왕의 간택을 받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임금은 모든 꽃을 찬찬히 둘러보더니 한쪽 구석에 꽃이 없는
화분을 들고 있는 남루(襤褸)한 차림의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왜 꽃이 없느냐?" 그러자 주눅이 잔뜩 듯 소년은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아무 꽃도 피우지 못했습니다. 임금님께서 주신 씨앗을 받아 바람과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고 물과 거름도 주며 정성을 다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꽃도 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참으로 거짓이 없는 소년이로구나.
나는 사람들에게 꽃이 피지 않는 볶은 씨앗을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임금이 준 씨앗이 꽃을 피우지 않자, 저마다 꽃이 피는 씨앗으로 바꿔
화려한 꽃을 피워 임금 앞에  들고 와서 임금에게 선택 받기를 고대했던 것이다.
사실 임금은 거짓 없이 진실한 마음을 들고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이 연극은 '꽃씨와 소년'이라는 전래동화였다. 

 

반세기가 더 지난 아득히 먼 초등학교 시절의 학예회 추억을 더듬는데,
문득 에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생각났다.
'어떤 것은 길에, 어떤 것들은 돌밭에,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에,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뿌린다.'
이 말씀대로 라면 좋은 땅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에 떨어진 씨앗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알게 된 일이지만, 실제로 예수님 시대 파종법은 기후와 땅의 환경 때문에
경작되지 않은 띵에 먼저 씨앗을 뿌리고 그 다음 씨앗이 흙에 묻히도록 쟁기질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지역이 석회층을 이루고 있어 쟁기질을 하기 쉽지 않을 뿐더러, 토양이 얕아
충분히 수분을 머금을 수 없으니 곡식이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다.
실제로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지고 기후를 잘 만나 알곡을
소출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10%에 불과 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팔레스티나의 척박한 땅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파종법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실은 말씀은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일 것이다.
착한 농부는 땅의 조건을 가리지 않고 씨앗을 뿌린다.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고 하늘의 새가 와서 먹어버리는 길바닥이든,

금방 햇볕에 말라버릴 돌밭이든, 숨이 막힐 가시덤불이든 농부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백배의 열매를 맺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마음의 꽃씨'라는 연극의 임금님처럼,

사람들에게 볶은 꽃씨를 주며 화려한 꽃을 피워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삶의 진실'을 원하신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그럼에도, 때로는 나이 들어 늙어 간다는 것이 허무하여 인생사의 애잔한 감상에 젖는다.

삶의 여정에서 보면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일인지만...

그러나 누군가와 동행하며 다른 누군가에게 나이만큼 축적된 삶의 지혜를 나누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야 말로 인생의 후반부를 빛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뭇 사람들이 말하기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고 하지 않는가.

얼마 전 남극의 펭귄들이 공생하는 감명 깊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펭귄들은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시속 100Km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어린 새끼와 알을 지켜낸다고 한다.

펭귄들은 서로 몸을 밀착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 잡단 전체의 체온을 유지한다.

그들은 바깥쪽에 선 펭귄의 체온이 낮아지면 안쪽에 선 펭귄이 자리를 바꿔주는

이른바 '허들링'(Hurdling) 방식으로 참혹한 추위를 함께 견뎌낸다는 것이다.

남극 펭귄이 혹한의 겨울을 어떻게 이겨 내는지를 생각하며

한 해가 지나기 전 내 삶을 돌아보고 방향도 점검해 본다.

'삶에 진지하고 사랑을 유지하는 당신의 오늘은 참 아름답습니다!'

이 얼마나 값진 찬사인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런 삶이 영위(營爲) 되기를!

 

두려움이 용기이고, 미안함이 곧 그리움이라고 했다.

주는 것이 받는 것이고, 센 것이 약한 것이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눈물어린 지혜를 누가 가르쳤을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포도주만 마시는 것이 해롭듯이 물만 마시는 것도 해롭다.

그러나 물을 섞은 포도주는 달콤한 기쁨을 자아낸다'

그렇다. 물이 희석된 포도주를 음미하며 인생의 씨앗을 맺어야 할 세밑에 선한 농부가

뿌린 씨앗을 어떻게 키워 곳간으로 거둬들어야 할지 지혜로운 삶이 필요한 시간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내 삶의 시간을 올곧에 바라보며 거기에 맞갖게 살아야겠다.

붉게 물들었던 속천만의 황홀한 노을도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깔리며 적막이 감도는 시간이다.

헝클어진 나열을 남기며 밤하늘에 반짝이며 떠 있는 내 인연의 별들 모두에게 '아일랜드 켈트족'의

축복 기도를 드리며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일랜드 켈트족의 축복기도>>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의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적을 만드는 데는 느리고 친구를 만드는 데는 빠르기를

이웃은 당신을 존중하고 불행은 당신을 아는 체도 하지 않기를,

 

당신이 죽은 것을 악마가 알기 30분 전에

이미 당신이 천국에 있기를,

앞으로 겪을 가장 슬픈 날이

지금까지 겪은 가장 행복한 날보다 더 나은 날이기를.

그리고 신이 늘 당신 곁에 있기를!”

  -2022,12,26 김종복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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