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 이스탄불 순례(1)

by 김종복(요셉) posted Oct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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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탄불 - 성 소피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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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굳건히 버틴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

5371227일 축성된 성 소피아 대성당은 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453오스만 투르크족의 군주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부터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대성당 모서리의 4개의 첨탑은 모스크로 사용되면서 세워진 것으로

메흐메트 2세는 대성당의 수많은 인물 모자이크와 벽화가 이슬람 계율에 위배된다 해서 석회로

     덧칠을 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이스탄불로 개명했다.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인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대규모 복구 사업을 거친 후

     회칠로 사라졌던 비잔틴 모자이크와 벽화들이 어느 정도 빛을 보게 되었지만, 현재 성 소피아 대성당

내부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 양식과 이슬람 모스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독특한 역사로 인해

성당 건물 자체만으로도 박물관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아야 소피아’는 ‘성스러운 예지’라는 뜻으로 공식 명칭은 아야 소피아 박물관’(Hagia Sophia Museum)이다.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갤러리에서는 예술을 중심으로 한 황제상, 성모자상 등 모자이크화를 감상할 수 있다. 모자이크화는 콘스탄티노풀의 성상파괴 이후 9세기 중반부터 그려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 축성식을 위해 입장하던 황제는 너무나도 감격해서

 "솔로몬 대왕이시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외쳤다고 한다. 현재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성 바오로 대성당,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이태리 밀라노 대성당

다음으로 다섯 번째로 큰 성당이다.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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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함께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 소피아 대성당 모습이 눈 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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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소피아 대성당정문으로 입장하는 일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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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입구를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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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Sophia) 대성당 내당의 모습.

성 소피아 대성당 순례를 위해 대성당 정문, 티켓 게이트, 대성당 외부 출입문을 지나면

세례대가 있는 복도가 나오고 문을 하나 더 들어가면 대성당 내부로

                                   들어가는 9개의 문이 있는 화려한 내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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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소피아(Sophia) 대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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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본 성 소피아 대성당 제대 방향

대성당 내부의 미흐랍(mihrab’은 이슬람 성지인 메카’(사우디아라비아) 방향으로 설치한 것으로

소피아 대성당이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면서 중앙제대가 있던 자리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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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제대 앞에서

원형 :성모자 황금 모자이크, 아래 원형 : 이슬람 미흐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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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벽과 코너에는 8개의 거대한 원판들이 붙여졌는데,

이 원판에는 이슬람 지도자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즉 미흐랍 오른쪽에 알라신, 왼쪽에 무하메드,

그리고 양 옆 벽에 있는 4개의 원판에 이슬람의 초기 4대 '칼리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직경이 7.5m인 이 원판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달필이라고 한다.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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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 중앙 제대 아래 우측에 온팔리온(OMPHALION)이란 동그란 표지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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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PHALION”의 사전적 의미는 제점(臍點 - 배꼽점)

라틴어로 옴파로스 (Omphalos) '배꼽, 세계의 중심, '방패의 중심돌기'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중앙 또는 중심을 말하며,


당대의 성 소피아 대성당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란 뜻으로

바닥에 박아둔 돌로 경계를 이루는 곳에서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곧 세계의 황제라는

 뜻과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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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1층에 1,250리터의 거대한 항아리는 16세기에 페르가몬의 고대도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일명 알렉산더 대왕의 보물 항아리 중의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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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 간구하는 모습의

모자이크 회칠로 심하게 손상되어 오른쪽 밑에 가상 복원도(원안)가 작게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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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모자이크 아래에 원 모습의 가상도를 사진과 같이 붙여 놓았다.

중앙 : 예수님, 왼쪽 : 성모 마리아, 우측 : 세례자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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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성당 2층 갤러리 - 가운데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으며,

왼쪽에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자신이 지은 성당의 모형을 봉헌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콘스탄티노플의 모형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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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2세 콤네누스와 이레네 사란타페카이나 황비의 모자이크

중앙 :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님, 왼쪽 : 금화 주머니를 든 요한네스 2세 콤네누스 황제

오른쪽 : 리본에 묶인 두루마리를 든 이레네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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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9세와 조에 포피로게니타 황비의 모자이크

가운데 예수님께서 성좌에 앉아 계시고, 오른쪽 : 콘스탄티누스 모노마쿠스 9세는 예수님께 황금을,

왼쪽 : 조에 황비는 기부를 인정하는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이 모자이크에서 여왕은 11세기에 그의

첫 남편인 로마노스 3세와 함께 그려져 있었는데, 남편이 죽고 새로 결혼을 하면서 황제의 얼굴과 황제

머리 위에 씌여진 문구가 바뀌었다고 하며, 현재의 모습은 그녀의 세 번째 남편 얼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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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갤러리 중앙 - 황후의 자리

 

34.png.jpg                                    2층 갤러리에서 바라 본 대성당 제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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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대성당천정 돔(펜덴티브 돔/pendentive))

네 면의 벽이 올라가고 둥근 돔이 얹혀지면, 그 경계면에는 역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 생겨나는데

이를 펜덴티브라고 한다. 이 공간에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인 세라핌(Seraphim)들이 그려져 있다.

여러 반구형 돔 중에서 가운데 있는 지붕은 웅장함을 더해 준다. 중앙 돔 아래에는 수많은 창문들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서 빛이 들어온다. 이 빛 때문에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성당에 들어가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신비로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세계, 즉 천상세계로 향하게 도와준다.

(출처:가톨릭 신문/정웅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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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소피아 대성당천정 돔(펜덴티브 돔/penden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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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갤러리 난간에서 바라 본 제대 위의 황금 성모자상(聖母子像)

 

35-1.png.jpg                                 제대 위의 황금(黃金) 성모자상(聖母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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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피아 대성당 출구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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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시대 황제의 출입문이자 현재 출구로 사용되는 내랑 오른쪽 끝에 있는 이 모자이크는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고 한다.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고, 왼쪽 원안에 성모 마리아, 오른쪽 원안에 가브리엘 대천사의 모습이 있고, 예수님 왼쪽으로

비잔틴 제국의 황제였던 레오 6세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자료 출처-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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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마치고 바라본 소리아 대성당 - 동로마 제국 시대에 건축된 ‘하기아 소피아 성당’

(Hagia Basilica of the Hagia Sophia)은 터키 이스탄불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스탄불 중심에 있는

독특하면서도 거대한 이 성당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하기아 소피아’는 ‘거룩한 지혜’라는 뜻이니 ‘거룩하신 하느님의 지혜를 담은 성당’이라 할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인데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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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가 멸망하고 박물관으로 변해버린 소피아 대성당!

이스탄불 성 소피아 대성당’(현재 박물관) 순례를 마치면서!

 19791128, 교황 요한 바오로 2는 가톨릭이 동, 서로 분열된 뒤 처음으로

동로마제국의 정교회 본산이었던 소피아 대성당을 찾아 직접 미사를 집전하셨다고 한다..

 

역사의 풍랑 속에서 굳건히 버틴 소피아 대성당!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하기야 소피야 대성당이다.

천 여 년이 지난 지금, 상처의 흔적은 역역하지만  옛 영광과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피아 대성당 순례 후 공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했던  아야 소피아 박물관’(Hagia Sophia Museum)에서

거룩한 지혜를 얻어갈 수 있다면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하느님, 감사합니다!!1

 

 

                                 하드포럼(전차 경기장)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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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 하드포럼 광장, 중앙 - 성 소피아 대성당, 오른쪽 - 이슬람 블루모스크

 

히포드롬 광장

로마의 잔혹했던 놀이 문화인 검투 경기가 펼쳐졌던

곳이지만 검투경기를 폐지한 이후 매립해 전차 경기장으로 바꿨다고 한다.

영화 벤허가 눈앞에 펼쳐질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광장의 크기는 거대했다.

길이 400m, 넓이 120m이며 3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

유명한 것은 세 개의 오벨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1500년께 만들어진 이집트 카르막 신전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오벨리스크,

그리스와 폐르시아의 마라톤 전투때 전사한 폐르시아군의 방패를 녹여 델피 신전에 세웠던

청동 뱀기둥 오벨리스크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의 청동은 십자군 원정 때 동전을

주조하기 위해 모두 떼내 지금은 돌기둥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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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드롬 광장의 오벨리스크 - 사진 앞쪽에 있는 것은 이집트에사 가져온(강탈),

뒤에 작게 보이는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오벨리스크.

(콘스탄티누스 7세 황제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바실레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10세기에  ‘히포드롬경기장에

세운 것으로 32m 높이의 기둥 외부에 청동과 금박으로 장식하여 호화롭기 그지없었으나 13세기 초

 십자군이 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청동을 떼어내 동전을 주조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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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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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경주장 히포드롬 한 가운데 8m 높이의 청동제 뱀기둥(Sernt Column)

뱀 세 마리가 서로 기둥의 몸통을 이루고 맨 위쪽에 세 개의 뱀 대가리(?)

바깥쪽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지금은 몸통만 일부 남아 있다.

뱀 대가리 하나가 거의 깨진 상태이긴 하지만 현재 이스탄불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남아 있어서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히포드롬의 뱀기둥은 기원전 479년에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것을

감사하기 위해 페르시아인들에게 빼았은 청동 방패를 녹여 만들어 기원전 478년에 그리스 델포이(델피)

아폴론 신전 동쪽 입구 앞쪽에 세웠던 것인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년 현재의 이스탄불로,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수도를 옮기면서 새집 집들이 기념으로(?)

 떼어다가 옮겼다고 한다.

 

 

                     이스탄블 - 블루 모스크'(Blue Mosque)108.png.jpg

6개의 첨탑을 갖고 있는 이스탄블 블루 모스크(Blue Mosque)’는 영어 통칭이며 공식명칭은

아흐메트 1세의 모스크’이다. 모스크 내벽을 장식하는 장식 타일의 기조가 청색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트 1세 모스크)

1603-1617년까지 통치했던 14번째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609-1616년에

지은 블루 모스크는 원래 회교 신학교, 병원, 아라스타 시장, 왕능, 대상들의 숙소, 학교,

     그리고 대중 우물이 함께 있는 사원 복합 건물로 지어졌다.

 

어린 시절 성 소피아 대성당”(당시에는 모스크)내 공부방에서 수학했던

  술탄 아흐메트는 성 소피아 대성당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모스크를

  건축하기 위해 블루 모스크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완성된 블루 모스크는 성 소피아 대성당보다 거의 천 년 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 소피아 대성당 중앙 돔보다 더 높게 짓지 못했다.       

   블루 모스크 중앙 돔의 높이는 43미터, 성 소피아 대성당의 55.6미터에

   미치지 못했다. (자료제공- 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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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 본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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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무릎도 불편해 뒤를 돌아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과 현지인들의 모습이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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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모스크 안에 입장하기 전,

내랑에서 사진에서 처럼 신발을 벗어 봉지에 담고 여성은 머리에 천을 둘러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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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교차로, 터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 사원 안에서 추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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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출구 - ‘성 소피아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출구를 통해 정면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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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후 바라본 블루모스크 - 잘 알지 못한 이슬람 문화와 그들의 믿음이지만

 블루모스크는 아름다운 모습과 그 위용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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