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 에페소 순례(2), 성모마리아 집, 사도 요한 기념성당

by 김종복(요셉) posted Sep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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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페소 성모마리아 집>>

               교회 역사에서 에페소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께서 아끼시던 제자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탁을 받은 제자는 요한이고,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소로 갔다고 한다. 마리아는 에페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431년 에페소 성모 성당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교부들은 성모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오셔서 성모 성당 터에 사셨다는 전설을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오늘날 에페소를  찾아가면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 아래 피니야 카풀루성모 마리아의 집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6-7세기 비잔틴 시대 집 주춧돌만이 남아 있었는데, 1950년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에서 그 주춧돌 위에 현재의 건물을 지었다. 이 자리가 정말 성모님의 집터였느냐

하는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1961년 교황 요한 23세의 정기적 전례 거행 허락과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의 참배 하셨고, ◈197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참배 이후 수많은

     순례객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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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성모 마리아의 집입구 - 안내문을 따라 사진의 왼쪽 길로 올라가면

성모님이 사셨던 집터에 새로 지은 집(경당)이 있고, 사진 오른쪽 길은

순례 후 입구로 나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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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사진 좌측) 모든 순례자를 환영하고 계시는 성모님이 있다.

성모님의 집애 오르는 길 오른쪽에는 각국 언어로 표기한 성모 마리아 집 안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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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집을 방문하는 만민을 환영하시는 성모 마리아와 한글 성모마리아 집 안내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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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집(경당)에 입장하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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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집의 성모상은 에페소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서 깊은 성모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발굴 당시 손목을 찾지 못해 성모님 집성모상에는 양 손목이 없다.

(사진 및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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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손목이 없는 에페소 성모 마리아 집성모상.

사진 촬영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 촬영은

불가했으며, 이 사진은 굿 뉴스 자료실

사진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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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바오로 2세의 성모 마리아 집 참배 - 사진은 에페소 성당에서 구입한 책에서 복사

 

성모 마리아의 집이 발견된 경위는 이렇다.

  독일 태생 카타리나 엠메릭크(1774-1824)라는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가 전신마비 증세로 마지막 12년을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자주 예수님과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는데,독일의 가톨릭 시인 브렌타노가 이를 채록해 1852년에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성모님의 집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1878년 이 책의 프랑스 번역본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을 본 라자로회의

  앙리 융(Henri Yung) 신부와 그 일행이 책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하는 집을

  이곳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 이듬해 이즈미르 대교구의 티오니 대주교가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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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께 드리는 촛불 봉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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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오른쪽으로 경사진 곳을 조금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

지금도 여전히 맑은 샘물이 솟아나 사람들이 물을 마시기도 하고 준비한 병에다 물을 채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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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집 샘터에서 올라가는 길 오른쪽 벽은 온통 메모지 매듭들로 빽빽이 장식이 되어있는데,

성모님 집에서 시작해서 샘물을 마신 후 각자의 소원을 적어 벽에다 꽂고 다시 성모 마리아 집에 가서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모두들 부지런히 샘물을 마시고 올라가면서

그곳에 소원을 적어 남겨 놓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길게 늘어져 부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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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내 원의를 적어 이곳에 꽂아 넣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리라 믿으면서!

 

 

 

<<에페소 사도 요한 기념성당>>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북쪽 성 밖 골고타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고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하며 성모님을 모시도록 하셨는데,

   그 사랑하시는 제자는 별명이고 그 실명은 알 수 없다.

 

사도 요한은 에페소에서 오래오래 살다가 선종해 에페소 뒷산 너머

   ‘아야솔루크’(Ayasoluk) 요새 남쪽에 묻혔다는 전설도 생겼다. 사도 요한이 묻혔다는

무덤 위에 4세기에 목조 성당이 세워졌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527-565) 돌과

붉은 벽돌로 십자가 형태를 지닌 돔 양식의 거대한 성당을 세웠다. 이 성당은 중세에

가장 성스러운 그리스도교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고, 사도 요한이 선종한 날로

추정되는 926일에는 많은 순례객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십자형 성당의 중심 돔 아래, 즉 제대 한 가운데 네 개의 대리석 기둥이

   서 있는데, 그곳이 바로 사도 요한의 무덤이라고 한다. 에페소, 페르가몬, 필라델피아

   아시아 지방에서 바오로보다 요한의 영향이 컸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자료:굿 뉴스 자료실, 정양모 신부 위대한 여행중에서)

 

413.png.jpg                                      입구에서 바라본 사도 요한 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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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요한의 무덤 위에 건립된 사도 요한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

일명 ‘박해의 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끝나고 새로

성당을 지을 때 모진 박해의 장소였던 인근 원형 경기장의 석축 자재를 뜯어내 

그 돌로 기념문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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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유적지 종합 지형도 - 이곳에서 에페소 유적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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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페소 사도 요한 기념성당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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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규모를 추측할 수 있는 사도 요한 기념성당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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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 반대편 언덕 위에서 바라본 모습 - 왼쪽이 제대 방향, 오른쪽이 회랑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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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성당의 회랑 부분 모습 - 나무 아래 에페소 유적지 지형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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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경, 목조로 지은 경당을 개축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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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성당의 성인 세례소  - 세례소는 과거 침례를 기본 형식으로 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세례자가 긴 가로 통로 한 쪽에서 가운데로 들어가 작은 사각 공간 안에 있는

사제에게 세례를 받고 반대편 통로로 걸어나가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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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사도 요한 무덤

 십자가 형태로 된 성당 구조,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중앙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고,

그 위에 성당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성인의 무덤 네 모퉁이에는 큰 돌기둥 네 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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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례자들의 묵상을 보며 갈릴래아 어부에서 시작된

요한 사도의 여정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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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요한 성당에서 바라본아야솔루크(Ayasoluk)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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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요한 기념성당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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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기념성당 회랑 안뜰과 성당 모습.

회랑 부분에서 제대 방향을 향해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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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성당에서 바라본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터와 주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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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서 일까, 늦게 나오시는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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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한 개와 신전의 벽으로 보이는 벽돌 외에는 잡초만 무성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신전에 있던 대부분의 기둥과 주춧돌은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

에페소의 사도 요한 성당을 짓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고대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고대 에페소]에 있었던 아르테미스 신을 모시던 거대한 신전.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손 꼽혔으나 268년 로마 제국을 침공한 고트족이 파괴하여 사라졌다.  신전은 높이 30m

너비도 대략 50 ×110 m가 넘었으리라 추측한다. 현재의 축구장과 비슷한 규모였다.

건물 자체도 클뿐더러 기반도 상당히 높은 곳에 건설되어서 에게 해 10 km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다니 위용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기념 성당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위치이다. 과거에는

바다였지만 강물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지금은 늪지대가 된 광활한 지역과 마주하고 있다.

사도 요한의 기념 성당 밑에는 이사베이 모스크가 있는데, 이 모스크 바로 밑에 위치해있다.

가봤자 별거 없고 입장료조차도 받지 않는다. 사도 바오로가 봉변을 당할 뻔한 에페소 극장은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있고, 아르테미스 신전 만큼이나 고대 헬레니즘 세계에서 수준급으로

큰 극장이었는데 마찬가지인 아르테미스 신전과 비교해보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들것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에페소는 바오로 사도와 인연이 깊은 도시다.

바오로 사도는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에페소에 교회를 세웠다.

그가 에페소에서 선교할 때 은으로 아르테미스 신전 모형을 만드는 사람과 이를 파는 상인들과

 갈등을 겪었다. 그들은 신전 모형을 팔아 엄청난 부를 챙기고 있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우상숭배 금지에 대해 힘주어 설교했다.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교인의 신전 모형을 더 이상 사지 않았으니 소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도19,19-40참조)

(자료:정양모 신주위대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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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에서 만난 양떼와 목자 - 요한 복음 구절이 생각난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요한10,11-1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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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샤다스는 유럽인이 선호하는 세련된 도시로, 항구에는 유람선이며 여객선들이

즐비한데  배를 타면 그리스의 여러 섬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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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샤다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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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샤다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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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샤다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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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에서 바라본 쿠샤디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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