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10주기를 맞은 어머니께!

by 김종복(요셉) posted Jul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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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종 10주기를 맞은 어머니께!

사랑하는 어머니!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차가운 우물물에 저녁 내내 담가두었던 두꺼비 등껍질 같은 개구리참외를 껍질째 한 입 깨물면 아삭하고 상큼한 맛은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일품이었지요. 해마다 이맘때면 저녁 모깃불을 벗 삼아 도란도란 평상에 앉자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할머니의 옛날 옛적 얘기를 듣다 잠이 들던 어린 시절, 그 때쯤이면 초가지붕 위에 새하얗게 피워 오른 박꽃은 수줍은 듯 고운 자태를 드러냈었지요.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꿈같은 고향의 아련한 추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 언제부터 인지 눈가에 자리 잡은 잔주름과 눈 밑 심술보가 제법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의연하지는 못해도 조금은 담담하게 대하려는 저를 볼 때면 노년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합니다. 혹자(或者)는 진정한 떠남은 그릇된 것에서 떠나는 것이고, 진정한 벗어남은 왜곡된 정체성에서 본래의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도 저는 잡아야 할 것보다 놓아야 할 것에 더디고, 눈으로 보는 삶을 넘어 가슴으로 헤아려 보려는 삶에는 입문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201271일 이른 아침, 어머니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온 몸으로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추스르고 어머니를 보내 드린지 어언 10년이 되었군요. 우렁이는 자기 몸 안에 40-100개 의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활하면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하는데, 어미 우렁이는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주고 빈껍데기로 물길 따라 떠내려간다고 합니다. 가물치는 수천마리의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을 하게 되고 이후 먹이를 찾을 수 없어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데, 이때쯤이면 알에서 부화되어 나온 수천마리 새끼들이 어미 가물치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으로 들어가 어미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며 어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합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저도 우렁이와 같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받고 살았으면서도 가물치 새끼와 같은 효심을 단 한 번이라도 드렸는지 상념에 잠기는데 가슴만 먹먹해집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얼굴을 그릴 수 없는 아버지 모습을 찾으려 하늘을 우러러 몸부림쳐보지만 무심하게도 파란 하늘에는 조각구름만 있었습니다. 그 하늘을 응시(凝視)하며 이윽고 생전의 어머니와 상봉했습니다. 울 어머니! 당신께서는 일찍이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시어 올망졸망 병아리 같은 어린 4형제를 어찌 키우셨나요? 남편을 잃고 세풍(世風)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셨던 시아버지와 인자하셨던 시어미니를 보내드릴 때마다 당신께서는 마당 한곳에 움막을 짓고 현대판 시묘(侍墓) 살이를 3년씩 하셨지요. 1950-60년대, 당신의 삶은 손발이 불어터지고 굶주림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걸을 수밖에 없었던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노년의 어머니를 호강(豪强)은 커녕 편히 한 번 모시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지아비를 여의시고 암담한 현실의 삶과 형용할 수 없는 인간적 고뇌와 처절한 고독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늙은 청개구리가 된 이 불효자식은 어머니 선종 10주기기 되는 오늘 회한(悔恨)의 눈물을 또 흘립니다. 어머니를 뵙지도 불러보지도 못한 세월 어언 십년이 되었습니다. 하늘아래 어느 곳에서 어머니!’ 라고 불러 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콧등과 눈시울에서는 전율이 흐르고 눈가는 촉촉이 젖어듭니다. ~ ~ 가슴 시리도록, 그렇게 가슴 아리도록 그립고 보고 싶은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 하소서!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님! 저 요셉을 가엾이 여기시어 이 죄인의 어머니 박대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종심(從心)이 지났음에도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 모성 앞에서는 여전히 기대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생명의 언덕이고 뿌리이기 때문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요? 문득문득 생각나는 어머니라는 단어는 서산마루의 노을처럼, 잔잔히 밀려오는 은빛 밀물처럼, 언제나 바라보고 싶고 함께 했던 옛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일깨워주는 세상에 더 없이 그립고 애잔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생전의 어머니를 기억하며 바치는 묵주 기도였습니다. "자애로우신 성모님! 저 요셉을 가엾이 여기시고 육신의 어머니 박대일께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아멘!!!" 어머니, 이제부터는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파 질 때도 어머니를 향한 격한 감정을 토로(吐露)하는 일도 회한의 눈물도 흘리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께서 더 이상 원하시는 일이 아니시라는 것은 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도 언젠가 돌아갈 본향(本鄕) 이르기 전에 의미 있는 삶의 갈무리를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에 보답 힐 수 있는 작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본당 연령회 봉사자로서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저승으로 떠나는 영혼들을 더욱 겸손하고 성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배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2022,7,1일 불효자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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