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원사 계곡에서

by 김종복(요셉) posted May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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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내원사 계곡에서

   이른 아침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고

   하늘을 우러러 기지개를 켜며 고사리를 뚝 뚝 꺾는데,

   범접(犯接)할 수 없는 산사의 침묵 속에 뻐꾹새 소리는 메마른 내 작은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눈 감으면 희미하게 떠오른 고향으로 나를 초대한다.

   아련한 향수는 가슴 아린 애틋한 그리움이 되어 계곡을 넘어 흩어지는데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들은 고운 선율에 맞춰 슈베르트의   

   세레라데 향연(饗宴)을 펼치듯 다가왔다.

 

   고고(孤高)한 자태의 내원사 계곡!

   그곳엔 한 치의 가공도 한 점의 얼룩도 없는   

   태고의 신비와 청정(淸淨)을 유산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수량(水量)은 적었지만 계곡의 해맑은 물소리는

   머 언 옛날 어머니의 자장가인양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인적 없는 계곡을 따라 만고풍상(萬古風霜)의

   숱한 사연을 고스란히 품은 내원사로 향했다.

   이윽고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그곳에서 인고(忍苦)의

   천년 세월의 흔적이 역역한 내원사를 만났다.

   해우(解憂)의 기쁨은 없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반야교를 지나 이별을 고하듯 넌지시 고개 숙이며 발길을 돌렸다.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

   이가 시리도록 파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데,

   어제와 완연히 다른 찬란한 태양은 원시(原始)의 계곡을 비추고 있었다.

   오월의 푸르른 신록은 검푸른 쪽빛바다를 이루고 고요한 침묵 속에 흐르는

   산사의 일급수는 영롱한 은빛 광채를 발하며 미소 지었다.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발걸음은 멈춰지고 

   쪽빛바다와 은빛 광채를 한동안 응시(凝視)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가슴 한편에 애잔하게 자리한 복잡다단

  (複雜多端)한 삶의 무게는 봄빛에 녹아내린 살얼음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걸음을 재촉하며 응얼거리던 콧노래는 어느 순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 ,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 ~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로 바뀌어

   그분을 찬미하며 엷은 흥분에 감싸인 나를 발견 했다.

                  -2022. 5. 2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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