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역사서 필사 후 바라본, '분노의 포도'

by 김종복(요셉) posted Sep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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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분노의 포도'  후기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밀려난 여름의 더위와 짙푸른 녹음(綠陰)의 

      자리엔 저만치 서있던 가을이 살포시 미소지며 우리 곁에 다가왔다.    
      알알이 익어가는 황금 들녘 구월이 지나고 시월이 오면,
      설악산 대청봉에서부터 시작될 오색 단풍의 향연(饗宴) 남녘의 지리산과 

      내장산 자락까지 내려와 요염한 자태로 뭇 시선을 유혹하며 가을 정취를 한껏 발하고

      산야를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물들이려는 갈바람에 억새가 은빛 군무(群舞) 되면

      누군가는 시인이 되어 뇌리에 새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화가가 되어 가슴에 담을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아래 풀꽃과 풀꽃 사이로 위대한 햇살이 반짝인다

      그들이 살아가는 힘이란 분명 저 반짝이는 햇살 덕분일 것이다
      이렇듯 오묘한 자연의 섭리(攝理)는 언제나 새로운 기대와 설렘을 동반한다
     

       구약성경 역사서 필사를 마치고 오랜 만에 여유를 부리며, 강산이 변할

      정도로 오래전에 읽었던 분노의 포도를 추석 연휴 막바지에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고 잔잔한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0년 퓰리처 수상작인 분노의 포도는  존 스타인벡

      대표작이며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출생한 그는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은

      1930년대의 리얼리즘(realism)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사회의식이 강렬한 작품과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온화한 휴머니즘이 넘치는 작품으로 대별된다는 것이 문학 평론가들의 지론이다.

 

     1928년경, 경제 대공황(大恐慌)의 뒤를 이어서 세계적으로

     대불황(大不況)이었던 시기, 특히 미국 농촌의 생활상은 비참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힘든 사회적 문제를 대담하고도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묘사해서 읽는 사람의 마음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심각한 사회 문제를 냉철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파헤침으로서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냉정히 꼬집는 동시에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삶을 끈끈한 인간애와 사랑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분노의 포도는 많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미국을 막연하게 풍요롭게 잘 사는 나라라고만 여겨 왔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대 공황이라는 위기가 있었고 그 위기를 슬기롭게 헤치고

     나왔기에 지금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분노의 포도의 무대는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의 땅을 빼앗기고

     기름진 땅 풍요와 여유로움으로 가득 찼다는 지주들의 광고에 유혹을 받아

     캘리포니아로 가는 25만 명의 이주자들 틈에 끼여 덜컹 거리는

     고물 자동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이야기의 주인공   조드 일가도 달려간다.

     오늘의 배고픔과 난민이라는 슬픔을 잊은 채 캘리포니아에서 행복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25만의 난민들은 그렇게 캘리포니아로,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것이다.

     그곳으로 이주해 온 빈농들은 '더러운 오우키들’(거지들)이라고

     멸시를 당하면서 온 식구가 나가서 해가 저물도록 일을 해도 겨우

     한 끼를 먹기 힘들 정도였고, 그나마 그런 일자리라도 걸리면 다행이었다.

 

     분노의 포도 이야기는 어찌 보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탈출기의 형식을 빌려 묘사한 서사시적인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던 자유의 땅 캘리포니아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착취(搾取)와  기아(飢餓)와 질병(疾病)이라는 점에서 성경 속의 이스라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과는 대비가 된다.

 

     노동력의 과잉으로 농장주들은 마음대로 임금을 깎아 전 가족이

     총동원하여 일을 해도 입에 풀칠을 하기 힘든 정도였다.

     결국 아들  톰 조드는 파업에 가담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죽어간다.

    그나마 품삯 일마저 바닥이 나고 설상가상으로 홍수까지 겹쳐 그들의

    가슴에는 분노의 포도만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것이 작품의 주제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굶주림과 과로 때문에 아이를 사산(死産)한 딸을 부축하고

     어머니는 오막살이로 비를 피해 들어간다.

     그러나 그곳에는 더 비참한 소년과 아버지가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훔쳐온 빵조차 토해 낼 정도로 기진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고 딸은 죽어 가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 ‘먹어야 해요그녀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녀는 더 가까이 다가가서 남자의 머리를 안아 들고 젖을 물려주었다.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손이 가만가만 소년의 아버지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창고 너머를 바라보았고 입을  꼭 다물면서 신비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전율을 느낄 만큼 가슴 뭉클한 이 장면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숨소리조차 죽여야 했다.

     그렇게 큰 울림은 긴 여운을 남긴 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소설 '분노의 포도' 이야기를 잠시 접고 주님을 바라보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포도원에 비유하시면서,  

     아침 일찍 온 일꾼이나 나중에 온 일꾼이나 똑같이 품삯을 주는  

     포도원 주인에게 투덜대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14p)

     하늘나라에는 먼저 온 사람도 나중에 온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평등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는 이 지상의 포도밭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도착하여야만 첫째가 될 수 있다.

     첫째가 되어야만 더 많은 권력과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온 사람들은 많이 소유함으로써 늦게 온 사람들을 멸시하고 착취한다.

     먼저 온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고,

     늦게 온 사람들은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지상 위의 포도밭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처럼 분노의 포도만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맹자(孟子)에 따르면 "정의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수오지심(羞惡之心),곧 부끄러운 줄 아는 마음"이라 했다.

     그럼에도 '분노의 포도' 에서 지주(地主)들과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서는 '수오지심'이란 찾을 수 없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 특히 다음 세대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다.’는 것을 공감하면서,

     ‘분노의 포도가 아닌 탐스럽게 익어가는 희망의 포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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