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 고백과 성지순례의 은총

by 김종복(요셉) posted Mar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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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앙 고백과 성지순례의 은총

   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8월 진해 해군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내가 세례를 받은 과정은 여느 교우들과는 사뭇 달랐다.

   교리 교육은 통신교리로 대체하였고 세례를 받던 날은 평일 오후 3시였다.

   성당에는 세례를 집전하신 신부님과 두 분 수녀님, 대리 대부인 군종병과 세례식을 지켜보는 아내만 있었다.

   형식이야 어떻든 나의 신앙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세례를 받은 연륜만으로 본다면 나의 믿음은 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장년에 접어드는 완숙 단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부터인가 심연에는 때때로 나를 짓누르며 혼돈(混沌)에

   휩싸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었다.

   참으로 고백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 신앙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일이다.

   그것은 ‘토마스 사도'처럼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진실인가(?)하는 회의(懷疑)와

   보헤미아 출신 '프라하의 베드로 사제'처럼 성체성혈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이었다.’

 

   이러한 회의와 의구심이 어리석고 나약한 내 이성과 충돌할 때면

   가슴과 머리는 헝클어지고 육신은 나락(奈落)으로 추락하는 심정 이었다.

   그 무렵 바오로 사도의 길을 따르는 그리스, 터기 성지순례에 이어

   ‘태초에 빛을 있게 하시고 당신 말씀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순례의 길을 떠나면서 당신께 의탁하오니 당신 아들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를 인도하소서...’라고

   순례자의 기도를 바치며 요르단, 이스라엘, 이태리 성지순례 여정에 올랐다.

 

   실패와 사랑과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수님께서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신 골고타 언덕에 자리한 ‘주님 무덤 성당’에

   당도하여 성묘경당에서 봉헌한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 중, 내 의지로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일행을 의식할 여지도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삶의 무게가 힘겨워 흘린 눈물도 아니며 죄악에 대한 통한(痛恨)과 참회(懺悔)의 눈물만도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그 눈물은, 누구에게도 단 한 번 고백할 수 없었던

   ‘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에 대한 회의’에 겸연쩍음과

   죄송함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분께 '봉헌한 눈물' 이었다!

 

   그렇게 눈물을 봉헌하는 시간이 지속되는데, 순간 '번쩍이는 섬광’을 보고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일찍이 맛보지 못한 고요와

   기쁨과 희열이 내 작은 가슴을 채우고 있음을 직감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성묘경당의 미사에서 한줄기 ‘빛’을 통하여,

   때로는 나를 짓누르며 갈등과 혼돈의 궁지로 내몰던

   ‘주님 부활의 의구심의 굴레’ 일소(一掃)시켜 주시며 나의 영혼을 씻어 주셨다!

   미사가 끝나고 주님무덤경당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참으로 가벼웠고

   감사와 환희로 모든 것이 평화롭게 보였다.

 

   예루살렘 성묘경당 미사에서 받은 충만한 은총의 흥분을 간직하며

   이어지는 순례의 여정은 로마에서 북서쪽 100㎞쯤에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성채(城砦) 같은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 ’ 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일행을 맞이해준 것은 볼세냐에서 있었던

   성체 성혈의 기적 850주년을 맞이해 설치한 상징탑이었다.

 

   오르비에토는 다음의 세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슬로 푸드(slow food)' 마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비에토'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백 포도주'가 유명하다.

   나머지 하나는 오르비에토가 성체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성지이자

   아직도 중세풍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신앙의 도시’라는 점이다.

 

   13세기 보헤미아 출신 프라하의 베드로 사제는 매일 미사 중에

   먹고 마시는 성체와 성혈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 성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다.

   오르비에토와 가까운 '산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그는 또 다시 의심을 품고 성체성사를 거행하던 중에

   성체에서 피가 떨어지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 인정한 '볼세냐의 성체성혈의 기적'이다.

 

   함께한 일행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성당 중의 하나로

   볼세냐에서 있었던 성체 성혈의 기적을 기념하여 건립된 '오르비에토 대성당'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는 '볼세냐의 기적, 성체성혈'의 '성체포(聖體布)'가 모셔져 있는 오리비에토 대성당의 경당에서 봉헌되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성체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곳을 응시(凝視)하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성체포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나의 의심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윽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사제가 ‘그리스도 몸’하며 내 손위에 놓아준 성체에 예수님이 계신 것이었다.

   나는 보았다!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현기증을 가까스로 수습하며 자리에 돌아온 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흘러내렸다.

   감사와 죄송함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이윽고 주님의 현존과 생명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십자가의 그분을 바라보았다.

   주님께서는 호통도 꾸짖으심도 없이 고운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때때로 나를 혼돈의 세계에서 몸부림치게 했던 밀떡이 성체일까(?)하는 회의(懷疑)

   참으로 주님의 몸인 ‘성체’라는 불변의 확신과 함께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고귀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죽음이 생명으로 변모된 부활의 현장인 예루살렘의 성묘경당과

   볼세냐에서 있었던 성체성혈의 기적, 성체포를 모시고 있는

   오르비에토 대성당 미사에서 나는 놀라운 은총을 충만히 받았다.

   막혔던 모든 것이 뚫려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나는 결코 잊지 않으리라!

   나의 얼룩진 상처를 말끔히 씻어주시고

   그곳에 당신의 참 평화를 안겨주신 주님을!

   나는 지금도 드라마틱한 성지순례의 은총을 미사 때마다

   가슴에 새기며 미사에 몰입할 수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드립니다!

 

         위에 나열한 체험 수기, '나의 신앙 고백과 성지순례의 은총'

               '본당 설립 25주년 발자취'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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