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기행 - 돈키호테(Don Quixote)를 만나다.

by 김종복(요셉) posted Jan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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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기행 - 돈키호테(Don Quixote)를 만나다.

 화가들의 고향 남프랑스(프로방스) 일정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항해 시대의 영광과 향수를 간직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스페인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작열(灼熱)하는 태양과 정열, 투우와 플라멩코(flamenco)를 연상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은 스페인에서 생활하다 여생을 마쳤는데, 선생이 교향악단을 창시한 지중해 서부 발레아레스 제도의‘마요르카’에는‘안익태 거리’가 있다. 나는 마드리드를 신, 구시가지로 나누는‘그린비아’거리가 시작되는 빌딩 숲속의 스페인 광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스페인이 낳은 불세출(不世出)의 작가‘미켈 데 세르반테스’와 그의 소설‘돈키호테’의 주인공을 만났다. 스페인 광장 중앙에는 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1916년에 건립했다는 세르반테스의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동상의 세르반테스는 오른 손에 두 권의 책(돈키오테 1,2부)을 들고 앉아 있으며 아래에는 애마(愛馬)‘로시난테’에 올라 탄 돈키호테와 노새를 탄‘산초 판사’의 동상이 함께 있다. 그 좌우에는 돈키호테가 상상하는 이상적(理想的) 여인‘둘시네아’와 현실 속의 여성‘알돈자’가 있다. 동상 주변에는 소설의 주 무대가 되었던‘카스티아 라만차’지방에서 이식(移植)했다고 하는 올리브 나무가 동상을 에워싸고 돈키호테 주인공들과 함께 있었다. 기념탑 꼭대기에는 오대주를 상징하는 다섯 여인이 지구를 등에 지고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데, 이는 소설 돈키호테가 세계인의 명작이라는 상징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광은 광장이라고 하기 보다는 작은 공원 같은 곳이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찾아오는 곳이다.

 

소설 속의 돈키호테는 기사로서 출정에 앞서‘델 토소보’마을 농부의 딸‘알돈자 로렌조’를 마음속에 그리는 상상의 공주와 귀부인을 암시하는‘둘시네아 델 토소보’라 칭한다. 또한 자신을‘라만차의 돈키호테’기사(騎士)라고 여기며 볼품없이 비쩍 마른 말에도 로시난테(Rosinante)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명명하고, 섬 하나를 정복해서 영주(領主)로 앉혀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간 마을 농부‘산초 판사’를 종자(從者)로 함께 모험을 떠나는 풍자적인 이야기이다. 돈키호테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부정과 비리를 바로 잡으며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을 도와주겠다고 자짐하며 정의의 기사로서 긴 여정을 시작한다. 비록 망상에서 비롯된 다짐이었지만 소설 속에서 그는 약하고 상처받은 자에게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악당으로 보이는 상대를 마주하면 불굴의 용기를 발휘한다. “자, 산초여, 저쪽을 보라. 서른 아니 마흔, 그보다 더 많은 흉악한 거인들이 버티고 서 있다. 이것이야 말로 정의의 전투다. 악의 씨를 근절시키는 것만이 하느님에 대한 위대한 봉사다.” 이렇게 말을 마친 돈키호테는 창을 들고 애마 로시난테와 함께 적진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거대한 풍차에 부딪친 돈키호테는 여지없이 말과 함께 나가떨어진다. 서른이 넘는 악당들은 산초의 말대로 때맞춰 부는 바람으로 날개까지 돌아가는 풍차였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 큰 모험을 위해 길을 떠난다. 이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풍차와 전투를 벌이는 널리 알려진 무모한 모험 이야기로 주인공 돈키호테의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 돈키호테를 얘기할 때면 매번 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이런 돈키호테를 생각하며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을 떠날 때, 광장 연못에 비치는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주인공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이 매우 아름다웠다. 스페인 광장에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알돈자 그리고 둘시네아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이 아쉽지만 그들과 작별을 고하고 또 다른 돈키호테를 찾아 마드리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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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 스페인이 낳은 불세출의 작가 세르반테스 (1547~1616) 기념비>

               세르반테스 서거 300 주년을 기념해 건립한 기념비이다. 1.세르반테스, 2.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3.돈키호테의 이상형 둘시네아, 4.현실 속의 여성 아르돈사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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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에서 바라본 기념비의 세르반테스, 그 아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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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광장의 세르반테스 기념비 뒷모습>

                       기념탑 꼭대기에는 오대주를 상징하는 다섯 여인이 지구를 등에 지고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데, 이는 소설 돈키호테가 세계인의

                                     명작이라는 상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만났던 스페인 광장을 떠나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천년 고도(古都)‘톨레도’를 방문하고, 평원이 지평을 이루며 끝없이 펼쳐지는 소설 돈키호테의 주 무대가 된‘카스티야 라만차’지역을 찾았다. 5월의 눈부신 태양은 따가웠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고요함을 품은, 푸른 기와와 회벽집들이 인상적인 작을 마을‘푸에르토 라피세’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머물렀던 여관인‘벤타 델 키호테’가 있으며, 소설 속 돈키호테가 이곳 여관 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던 여관 벽에는‘돈키호테가 이곳에서 묵고 나서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만족스럽게 걸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붙어 있다. 돈키호테는 이 여관을 거대한 성(城)으로 보았으며 옆방의 매춘부를 공주로 대접하고 엉터리 기사 서품식을 가진 대목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푸에르토 라피세’에는 관광객을 제외하면 사람도 차도 간혹 보이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여관(벤타 델 키호테)은 레스토랑과 카페로 바뀌었고, 내부는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으며 직접 만든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을 판매한다.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과 여관은 작고 초라해 보였지만 가슴속 돈키호테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다. 여관 입구에 서있는 돈키호테는 긴 창을 들고 턱을 들어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어 나도 모르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돈키호테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엉뚱하게도‘성경(聖經)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무엇일까? 성경과 소설 돈키호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라고 반문해 본다. 공식적인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각각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만,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 무대가 된 스페인 중남부 카스키야 라만차의 작은 마을에서 얻는 해답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이고, 성경과 같이 방대한 분량의 돈키호테(1,2부)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생각했다.

 

돈키호테의 풍자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저자(著者) 세르반테스의 삶은 소설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의‘착각일지라도 행복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1571년‘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왼팔에 큰 부상을 당했다. 귀국길에 해적에게 잡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드 근처 고향으로 돌아와 셰익스피어가‘햄릿’을 발표한 5년 후 돈키호테를 발표했다. 작품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작 그는 생활고로 인해 출판업자에게 이미 판권을 넘겨버린 까닭에 경제적 이득을 얻지는 못했다. 세르반테스는 죽기 1년 전, 돈키호테 1부가 출간된 지 10년 뒤 2부를 발표했다. 이후 돈키호테는 이상(理想)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행동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2015년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2부를 발표한지 400년이 되는 해다. 1부에서‘섬을 하나 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종자(從者)가 되어 돈키호테 기사를 충심으로 따랐던 산초 판사는 2부에서 섬의 총독이 된다. 현실주의자로 변신한 산초는 단 한 번도 주인의 꿈을 부정하거나 놀림감으로 삼지 않는다.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모험을 위주로 하던 1부가 재미있었다면 2부는 확연히 사색적이고 삶의 지혜를 보여주는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으로 벌을 주어야 할 사람을 말로 학대하지 마라. 그 불행한 자에게는 형별의 고통만으로도 충분한데 다른 말까지 덧붙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섬으로 떠나기 전 산초에게 건넨 충고에서 돈키호테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천신만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제 정신을 되찾은 돈키호테는 숨을 거둔다. 꿈꾸지 않고, 이상을 향해 돌진하지 않은 돈키호테는 더 이상 돈키호테가 아니며 그런 그에게 삶이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돈키호테가 죽자 사람들은 그의 묘비에‘미쳐서 살고 제 정신이 들어 죽었노라’고 새긴다. 세르반테스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썼다. “돈키호테는 오직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는 그를 위해 태어났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푸에르토 라피세’의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기념품 가게에 전시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바라보며 상념(想念)에 휩싸인다. 지난 4월 23일은‘세계 책의 날’이다. 이 날은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와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이다. 1616년 4월 23일 사망한 두 작가를 기려 유네스코는 이 날을‘세계 책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러시아의 어느 작가는 현실감각 없이 밀어붙이는 사람을‘돈키호테형 인간’, 고민한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햄릿형 인간’이라고 구분했다.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풍차 거인처럼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상대 앞에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주저 없이 돌격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꿈과 이상이라는 인간 발전의 힘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위대하신 여러분,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미친 것이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미친 것이요.”라는 돈키호테의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도전할 용기마저 상실한 젊은 세대에게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박희권 스페인 대사는 책의 날에 되새기는‘돈키호테의 교훈’이라는 기고에서“세르반테스 돈키호테는 삶에 지친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질문 하면서“데카르트는‘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세르반테스는‘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상과 신념에 미쳐 미래를 만들어가는‘돈(Crazy)키호테’가 될 것인가, 현실에 안주해 꿈을 잊고 사는‘돈(Done)키호테’가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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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라만차 지역의 '푸에르토 라피세'의 작은 마을에는 

                        돈키호테가 머물렀던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 여관이 있다. - 여관 내부>

                                여관은 소설 돈키호테의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

                                    직접 만든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1층 레스토랑 2층, 기념품 가게, 돈키호테 자료실(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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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키호테가‘벤타 델 키호테’여관에서 기사작위를 수여받은 우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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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 입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돈키호테의 염원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고전을 읽을까. 고전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소설이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 게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바뀌어도 그 안에는 변하지 않는 삶의 지혜가 있고 인간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이 있기 때문에 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소설 속의 기사(騎士)를 찬양하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 모험에 나서는 돈키호테의 흉내의 삶은 이상과 영웅을 잃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세계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돈키호테가 거인인 줄 알고 풍차로 돌진했다는‘캄포 데 크림타나’, 돈키호테가 사랑한 상상 속의 여인‘둘시네아’가 살았다는 집과 돈키호테 도서관이 위치한‘델 토보소’와 풍차의 마을‘콘수에그라’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푸에르토 라피세’의 벤타 델 키호테 여관은 모두 소설 하나로 유명해진 곳이다. 소설 속의 돈키호테는 스페인 전역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지나쳐 간 기나긴 여정‘돈키호테의 길’곳곳에는 마치 실존했던 인물 같이 그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충직했던 동반자 산초 판사와 함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순례의 여정이 시작된다고 했다. 어제가 내 삶의 역사라면 내일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것이다. 어제와 내일 속의 오늘 하루는 창조주께 덤으로 받은 귀중한 선물의 시간이다. 그 귀한 시간을 마드리드와 푸에르토 라세피에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만나고 함께했다. 짧은 일정 중, 돈키호테의 삶 속에서 세상의 돈키호테를 바라보고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떠난다. 이제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의‘알함브라 궁전’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며 세르반테스가 남긴 금언을 가슴에 새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의 덕을 나도 가지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나쁜 점이 나에게도 있지 않은가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안녕, 푸에르토 라세피! 안녕, 돈키호테! 안녕 산초 판사! 당신들과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음을 고백합니다.

                       -'계간  진해' 92호(2016년 12월  발행)에 기고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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