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 순례(2) - 산타 키아라(클라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by 김종복(요셉) posted Dec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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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 순례(2) - 산타 키아라(클라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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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카 마조레 성(城)에서 바라본 ‘성 루피노 대성당’, ‘성 키아라(클라라) 성당’과 움브리아 평원>

전형적인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한적한 언덕 위의 작은 도시 아시시는 움브리아 평야의

아름다운 경치와 끝없이 이어지는 나지막한 푸른 구릉, 올리브와 해바라기, 삼나무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들녘 풍경, 푸른 밀밭의 목가적(牧歌的) 전원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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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의 전망대라 일컫는 로카 마조레 성(城)에서 바라본 ‘성 루피노 대성당’>

‘산타 키아라 성당’과 가까운 곳에 아시시의 첫 번째 주교이자 수호성인인 ‘루피노’를 위해 만들어진

주교좌성당 ‘산 루피노 성당’이 있다. 프란체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시 사람들이 여기서

 세례를 받았으며 지금도 성당 내부에는 당시 사용했던 세례단이 남아있다. 이 성당은 프란체스코 성인이 자신의

삶을 반대하던 아버지 앞에서 옷가지를 모두 벗으며 상속권마저 포기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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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해가 모셔진 산타 키아라(클라라) 대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1212년 프란치스코회 첫 여자 수도자가 된 후 봉쇄 수도회인 '글라라회'를 창설하고

 42년간 엄격한 수도생활을 했다. 성녀의 청빈한 삶을 그대로 드러낸 듯한 성 클라라 대성당 외형은

분홍과 흰색이 번갈아 가로 줄무늬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 역시 단아한 모습이다. 성당을 찾는 이들이 제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천정화도 제단 위에 있는 것이 전부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흰빛의 위엄을

 내포하고 있다면 클라라 성당은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색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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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라라 성당 제대  - ‘다미아노 십자가’(THE SAN DAMIANO CROSS)원본>

프란치스코는 1212년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클라라를 그리스도께 의탁 시켰다.

클라라는 아시시 교외 작은 성당인 ‘포르치운쿨라’에서 십자가에 친구함으로써 가난한 영성과

하느님을 맞대면하는 관상적 삶으로 들어섰다. 보석이 박힌 옷을 버리고, 삼단 같은 머리채를 싹둑 잘랐다.

거친 수도복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가린 채, 낮은 신을 신었다. 아시시 명문가의 아름다운

처녀 클라라는 이렇게 가난한  ‘동정녀 클라라’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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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클라라 성당 제대 위의 ‘다미아노 십자가’(THE SAN DAMIANO CROSS) 원본>

성 프란치스코와 관계 깊은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아닌 클라라 성당에

있게 된 이유라면, 당시 다미아노 성당에 머무른 클라라회 자매들이 다미아노 성당에서

클라라 성당으로 이사하면서 성녀 클라라의 유물과 함께 옮긴 것이다.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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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 대성당 좌측에 있는 성체 조배 경당 – 성체 조배를 하는 경당은 발소리, 숨 소리도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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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을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내부에 성녀의 유해를 바라보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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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살 사이로 보이는 글라라 성녀 유해(지하무덤)>

 

     27.png   <산타 키아라(클라라) 지하 무덤에 밀랍으로 밀랍으로 덮인 성녀의 유해>

1252년 성탄절 밤, 중병으로 꼼짝도 못하던 클라라 성녀는 병실을 떠나지  않고도 2km나 떨어진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자정 미사에 참석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프란치스칸들과 함께 청빈을 실천함으로써 무너져가는

교회를 일으켜세우는 내부적인 개혁을 완성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세상에 복음적 가난과 사랑의 빛을 던진

성녀의 유해는 사후 597년 만인 1850년 썩지 않은 채로 온전하게 발견되어 클라라 성당에 모셔졌다.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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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 성녀 유품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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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라라 성녀의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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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년, 아시시의 공작 스티피가(家)의 저택 뒷문으로 신부(新婦)같이 단장을 한

 어떤 귀부인이 시종으로 보이는 여인과 더불어 ‘포르치운쿨라’ 소성당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성당 앞까지 왔을 때, 성당 안에서는 수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나와 그들을

영접하며 그 여인을 제대 앞까지 인도했다. 곧 엄숙한 기도와 성가가 교대로 온 장내를 울리고, 다시 조용해지자

그 여인은 삭발을 하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소복으로 온 몸을 두르고, 노끈으로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서

제대 앞에 엎드렸다. 클라라는 1212년 3월 18일,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의 프란치스코  

앞에서 이렇게 삭발과 착복식과 순종을 서약했다.(자료:가톨릭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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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체사리의 성녀 클라라와 아시시 포위공격 장면>

1240년, 독일의 황제 프리데리코 2세와 막강한 사라센군이 아시시를 공격, 클라라 수녀원

봉쇄구역까지 침범하자 병석에 누워있던 클라라는 기도를 바쳤다. “동정녀들을 보호할 힘이 없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직접 보호하여 적의 손에 넘기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마친 클라라가 성광을 들고

 사라센군 앞으로 걸어 나가자, 성광에서 이상한 빛이 나와 사라센군을 물리쳤다. 풍전등화의

수녀원울 성령의 힘으로 물리치며 지켰다. (사진 및 자료:굿 뉴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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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성녀의 삶과 일화>

클라라 성녀는 열여덟의 나이에 집안의 반대를 물리치고 사부 프란치스코를 찾아 수도 생활을 청했다.

그 시대 여인들에게 허용된 결정권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놀라운 예언자적 용기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가난한 삶을 중심으로 삼은 수도 공동체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니 누구보다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한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것이다. 클라라 성녀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적인 만남은 교회사와 영성사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에 속한다.

 

어느 겨울,

프란치스코는 사람들의 오해를 피하고자 클라라가 자신을 찾아 아시시를 방문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한다. 슬픔에 잠긴 클라라는 길을 돌아서며 문득 이렇게 묻는다.

“사부님,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게 되나요?”  “여름이 와 장미가 필 때면...”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갑자기 주변의 노간주나무 주위에 장미꽃이 만발한 것이다.

잠시 놀라 이를 바라보던 클라라 성녀는 장미를 따서 성인의 손에 놓아 주었고,

그 뒤로는 둘이서 영적 만남을 자주 가졌다고 전해진다.(자료 : 가톨릭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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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 성당 순례를 마치고서 떠나면서! - (‘키아라’는 영어 발음인 ‘클라라’의 이태리식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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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클라라 성당 순례 후 광장 난간에서 바라본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주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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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시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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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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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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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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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골목길 사이에서 만난 풍경은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였다.>

성자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자취가 구석구석 새겨진 이탈리아 중부의 푸른 심장이라 불리는

 움브리아주의 수바시오산 비탈에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천상의 마을  아시시에서는

소란스럽던 마음은 어느새 성자와 성녀의 체취를 느끼며 행복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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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의 도시 아시시의 중심에 자리한 코무네 광장(Plazza del Comune)

1.시민의 탑 2.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3.코무네 광장 분수대

노란색 원안은 함께한 일행이 프란치스코 대성당으로 이동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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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 중심, ‘코무네 광장’ 시민의 탑 옆에 있는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Santa Maria sopra Minerva)>

기원전 100여 년 전, 미네르바 신전(Tempio di Minerv/지혜의 여신)이 있던 곳인데 베네딕도 수도회에 의해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겉모습은 신전 모습이고 내부는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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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무네 광장(Plazza del Comune) 시청사 옆에 있는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제대>

중앙 제대에는 12개의 별이 있는 화관을 쓰신 성모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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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 위의 평화의 도시 아시시 중심지 - 코무네 광장의 노상 카페와 주변의 풍경>

 

      39-0.png                                                       <아시시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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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과 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지만 아름다운 아시시의 골목 풍경>

골목의 한 건물 벽에 그린 성화는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 층에 있는 ‘석양의 성모’ 성화 중에서

성모님께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엄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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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시 순례를 마치고 이동하는 일행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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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아시시 호텔 전망대에서 아랫 마을(평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주변의 풍경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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