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사 (4)

by 사목회장 posted Apr 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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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해교난 (순조27년 서기1827)
정해교난이란 순조27년 음력 2월부터 5월말까지 전,후 넉달에 걸친 교회박해를 지칭하는 것인데 이 박해는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는 나오지도 않으니, 그만큼 이 박해에 대한 인식이 적고 또 알려져 있지 못한 박해이다
.
 1826
년에 일본정부는 우리 냅?엄중한 천주교도 탄압정책 밑에서 허덕이던 천주교도들 가운데 6명이 배로 탈출하여 조선으로 도망하였으니 이 사건으로부터 정해박해는 시작된다
.

8.
이 교난의 특생은

첫째, 시간적으로 비교적 단시간에 종식되었다는 점,
둘째, 중앙정부의 직접적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

셋째, 중앙정부가 사형선고의 집행을 가급적, 천연시킨 점,
넷째, 검거된 수에 비해 순교자의 수가 많지 않은 점
,
다섯째, 전국적인 것이 아니라 전라도와 기타 일부에 한해졌다는 점이다
.
정해교난 당시 정계는 순조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바로 정해년 초 (2 9)에 세자가 대리청정케된 때로써 종래 30년간이나 내려오던 안동 김씨인 김조순의 세도가 무너지고 그대신 세자의 장인인 풍양 조씨 출신인 조만영의 세도 정치가 등장하게 되면서 김씨와 조씨의 세력 투쟁이 음양으로 격심한 때였다
.
그런데, 정해박해가 일어나게된 동기는 1815년 을해박해 후 천주교도 탄압의 손길을 늦추고 있었던 당국자들에게 새로운 탄압의 자극을 준 것은 일본이다
.
배교자의 비율이 어느 박해때 보다 많았던것이 특징인 것
.
4
개월간의 박해가 1827?검거 소동은 없어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