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1)

by 사목회장 posted Apr 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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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의 기도문
                                                                                           
조광(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일찍이 교부 오리게네스는 기도란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여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기도는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기도를 묵상기도와 염경기도(
念經祈禱)로 나누어 구별했다. 특히 염경기도는 묵상기도와는 달리 정해진 기도문을 외우면서, 기도문에서 제시하는 내용에 따라 하느님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교회도 창설 이래로 이러한 기도를 중요시해 왔다
.

경문과 신공 그리고 기도

신앙에 대한 박해가 진행되던 1864년 서울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성교요리문답1조목을 보면, “너는 무엇을 위하여 성교회에 나오느뇨?”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함을 위함이니라.”였다. 이처럼 그들이 천주교에 나오는 목적은 간단명료했다. 이 선명한 목적을 실천하고자 적지 않은 신도들은 자신의 생활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희생하기도 했다. 삶이란 단어에는 생명과 생활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감안할 때, 그들은 자신의 삶 전체를 믿음에 바쳤다.

신자들의 믿음살이를 이끌어주던성교요리문답에서는 다시 질문하기를,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를 원할진대 마땅히 무슨 본분을 다할고?”라고 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는 이단을 끊어버리고, 잘못된 행위를 고치며, 천주교회의 규칙을 지킴과 함께교중 도리와 긴요한 경을 배워 익힐지니라.”라고 제시하였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이란 단어는 곧 기도문을 말한다
.

박해시대 우리 교회에서 사용되던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려면 당시 선교사들이 편찬했던한불자전이나불한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한국어 단어를 프랑스어로 제시해 놓은한불자전 1868년 초고를 완성했고, 188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되었다. 또한 프랑스어 단어를 한국어로 옮겨 적은불한사전은 늦어도 1869년에는 초고본이 완성되었지만, 미처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다가 최근에 이르러 영인되었다
.

이 사전들은 19세기 중엽의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뿐 아니라, 당시 신자들의 독특한 언어생활의 한 단면을 밝혀줄 수 있는 주요 자료이다. 그런데한불자전에 보면,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기도기구라는 단어는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대신에’, ‘경문’, 또는축문’, ‘신공이라는 단어가 표제어로 채록되어 있다. 물론 박해시대 프랑스인 선교사들은기도기구라는 한국어 단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불한사전의 조선어 해설문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박해시대 교회에서 사용하던 경(
)이나 경문(經文)이란 단어는 동양의 전통적 종교인 불교나 유교의 경전을 일컫던 단어였다. 그리고 교회에서 사용하던 축문(祝文)은 원래 유교적 제사에서 특별한 기원을 가리키던 말이다. 당시의 교회는 이렇게 타종교의 단어들에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여 자신의 말로 사용했다. 그리고 당시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신공(神功)이란 단어는 원래기도와 선공(善功)’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었지만, 박해시대 이래 교회에서는 주로기도라는 의미로만 사용하였다
.

박해시대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기도는 일곱 성사와 함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기도는 이처럼 박해시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또한 당시의 신자들도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에는묵상기도염경기도가 있음을 알았다
.

교회창설 초기의 자료에서묵상신공”(
黙想神功) “묵상지장”(黙想指掌)과 같은 기도서가 있음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신자들도 묵상기도를 드렸음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신자들이 당시에 사용하던 기도서를 볼 때 그들은 여러 종류의 염경기도를 바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


공과와 십이단의 세계

 
염경기도란 정해진 형식의 기도문을 외우거나 읽으며 드리던 기도를 말한다. 박해시대 이래 신자들은 염경기도를 흔히신공이라 했다. 그들은 여러 기도서를 가지고신공을 바쳤다.” 신공은 신자들에게 영적 훈련이요 신심의 실천이었다. 이 신공 가운데 그들의 영적 세계가 전개되고 있었다. 염경기도문이 수록된 대표적 기도서로는공과십이단이 있다.

이 가운데 공과(
功課, Orationes Communes)는 넓은 의미로 매일 기도를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주일과 축일의 기도문을 비롯하여 그 밖의 여러 기도문을 수록한 기도용 책자를 말한다. 1801년의 박해 때에 정부당국에 압수된 천주교 서적의 목록에는천주성교일과수진일과등 공과와 같은 종류의 기도서들도 있다. 그러나 박해시대 초기 우리 교회에서는 기도문들이 미처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

그리하여 1837년에 입국한 앵베르 주교도 신자들이 바쳐야 할 기도문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나 1839년의 박해 때문에 중지되었다. 이 박해 때에 앵베르 주교가 순교하자 기도서를 정리하는 작업은 최양업 신부와 다블뤼 신부 등에게 이어졌다. 이들이 정리한 기도문들은 1864년 베르뇌 주교의 감준을 받아천주성교공과”(4 4)가 목판본으로 서울에서 간행되었다. 이로써 조선 신자들은 표준 기도서를 갖게 되었다. 이때 간행되기 시작했던 공과는 1972가톨릭 기도서가 간행될 때까지 1백여 년 이상 사용되었다
.

박해시대 이래 천주교 신자들이 반드시 암송해야 할 기도문으로는십이단(
十二端)’이 있다. 십이단은 기도문 가운데 중요한 12가지 기도, 곧 성호경, 삼종경, 천주경, 성모경, 종도신경, 고죄경,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 소회죄경, 천주십계, 성교사규, 삼덕송, 봉헌경을 말한다. 이 기도문들은천주성교공과에 수록되어 있는 많은 기도문 가운데 가려 뽑은 것이다
.

열두 개의 기도문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십이단은 중국이나 서양의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조선교회의 독자적 기준으로 선정한 기도문임에 틀림없다. 십이단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1864천주성교공과간행을 전후하여 그 가운데서 신앙생활의 실천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기도문 12개를 선정하였으리라 추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도문은 곧 신자들에게 보급되었다
.

그리하여 1866년의 박해 때에 체포된 신자들의 신문기록에서십이단을 보았다는 기록이 나타나게 된다. 원래 한자어(
)’사물의 끝이나항목’, ‘개소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12단은 ‘12개 항목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를 기도문에 적용시킬 경우에는 12개의 기도문이 된다. 그러기에 1868년에 초고가 완성된한불자전에 채록된 십이단이란 단어는천주경, 성모경 등 12개의 기도문이라고 간략히 설명되어 있다
.

이 기도문은 신자들이 외워야 할 주요 기도문으로 점차 강조되어 갔다. 그리하여 1887년에 간행된조선교회 지도서에서는 예비신자들이 십이단을 외워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

그러나 예외도 있었으니, “조선교회 지도서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세례를 받으려면 신부의 관면을 받아진교절요를 배우면 된다.”고 규정하였다. 이 책에는요긴한 경문 6으로성호경, 천주경, 성모경, 종도신경, 천주십계와 성교사규, 소회죄경, 삼덕송 7종의 기도문이 제시되어 있었다
.


남은 말

 
박해시대 신자들은예수께서 12사도를 훈계하여 가라사대 너희 무리 마땅히 항상 구하여 항상 그치지 마라.” 하셨음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들은 기도란 천주를 향하여 말씀함이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함이며, 그 은혜를 감사하며 구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박해시대 우리나라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서는 매일의 기도에 길잡이가 된 공과였다. 또한 19세기 중엽 이후에 확정된 십이단과 같은 기도문은 신자들의 머릿속에 깊이 스며들어 그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

그들은 십이단을 외웠고, 묵주신공과 성로신공 등의 기도를 바쳤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항상 구하고 항상 그치지 않으며 기도한 그들의 모범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여전히 높은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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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한국 천주교회사 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등의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

[
경향잡지, 2009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