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기행 - 돈키호테(Don Quixote)를 만나다.
남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작열하는 태양, 정열, 투우, 플라멩코가 머릿속을 스친다. 나는 마드리드의 신·구시가지 경계인 ‘그란비아’ 거리 근처 스페인 광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세르반테스 기념비와 함께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의 인물들이 동상으로 서 있다. 말 ‘로시난테’에 탄 돈키호테와 노새를 탄 산초 판사, 그리고 그가 사랑한 여인 ‘둘시네아’와 ‘알돈자’의 조각이 주변의 올리브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다. 작은 공원 같은 이 광장은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는 명소다.
이 광장에서 나는 잠시 멈춰 앉아, 세르반테스가 1605년에 세상에 내놓은 그 위대한 작품, 『라 만차의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소설은 단순한 풍자 소설이 아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 너머로, 인간의 꿈과 현실, 허상과 진실이 얽혀 있는 철학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돈키호테' 이야기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소설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라만차 지방에 사는 몰락한 시골 귀족이다. 그는 기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신도 진짜 기사라고 믿게 된다. 녹이 슨 갑옷을 꺼내 입고, 마른 말 ‘로시난테’를 자신의 충직한 전투마로 삼고, 가난한 농부의 딸 알돈자를 고귀한 숙녀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고 이름 붙이며 그녀를 위해 싸우겠다고 맹세한다. 그리고는 순박한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로 삼아,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늘 왜곡되고 비틀어진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거대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장면이다. 돈키호테는 거인이라 착각한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돌진하지만, 날개에 휘말려 나가떨어진다. 산초 판사는 이를 말리지만, 돈키호테는 “악한 마법사가 풍차로 모습을 바꿨다”고 말하며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는다. 이 장면은 그의 순수한 신념과 광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에도 돈키호테는 여관을 성으로 착각하고, 사냥터를 전쟁터로 여기며, 도적 떼를 악당으로 착각하는 등현실을 끊임없이 이상으로 포장하며 엉뚱한 행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언제나 ‘정의’라는 목적이 있다. 억눌린 자를 해방하고, 약한 자를 도우며, 고귀한 이상을 위해 싸우는 그의 모습은 때로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감동적이다.
산초 판사는 늘 현실적인 시각에서 주인을 말리지만, 점차 그도 돈키호테의 이상에 감화되어 간다. 산초는 때때로 주인의 말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끝내 그의 곁을 지킨다. 이 둘의 관계는 허상의 이상과 냉혹한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돈키호테 여정의 끝 — 미쳐서 살고, 제정신으로 죽다-
세르반테스는 1615년, 『돈키호테』 제2부를 발표한다. 제2부에서 돈키호테는 더욱 깊은 모험을 이어간다.이때는 이미 그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며 장난을 치거나 조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진짜 기사”가 되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한편, 산초 판사는 작지만 진지한 의문을 품는다.과연 이 모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결국 마지막에 돈키호테는 병에 걸려 오랜 방랑을 끝낸다. 그리고 침상에서 “나는 더 이상 기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광기를 벗고 정신을 되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환상을 거두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는 ‘미쳐서 살고, 제정신으로 죽은 자’로 기억된다. 세상이 만든 허상을 끝내 넘지 못하고, 현실 속에서 끝을 맞는 그의 모습은 씁쓸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울림을 준다. 그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품었던 이상은 결국 독자의 마음속에서 살아남는다.
-라만차를 가다 — 돈키호테의 흔적을 좇아-
마드리드를 떠나 나는 돈키호테의 무대 ‘카스티야 라만차’ 지방으로 향했다. 천년 고도 톨레도, 평원이 펼쳐진 푸에르토 라피세 등 돈키호테가 지나간 마을들을 하나하나 밟아 나갔다.
특히 푸에르토 라피세에는 돈키호테가 여관을 성으로 착각하고 기사 서품을 받은 장소가 있다. 지금은 전통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가 들어서 있지만, 그 내부는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당시 돈키호테는 여관 주인을 성주로 착각하고 “자신을 정식 기사로 임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여관 주인은 그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기꺼이 장난처럼 그의 요청을 들어준다. 그렇게 돈키호테는 자신이 ‘정식 기사’가 되었다고 믿고, 더욱 확고한 신념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이 에피소드는 현실과 허구가 얼마나 쉽게 뒤섞이는지를 상징한다.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순간, 현실은 종종 부차적인 것이 된다. 세르반테스는 그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허상을 통찰한다.
-돈키호테, 인간 정신의 또 다른 이름-
세르반테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레판토 해전에서 부상을 입고, 해적에게 납치되어 포로 생활을 했으며,『돈키호테』를 발표했지만 큰 경제적 보상을 얻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제2부는, 단지 소설의 결말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반추이기도 했다. 돈키호테는 단지 허황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이상을 좇는 인간의 순수한 도전정신을 상징하며,지금도 스페인 곳곳에서, 아니 전 세계 독자의 마음 속에서 살아 있다.
현실을 밀어붙이는 ‘돈키호테형 인간’은고민만 하다 행동하지 못하는 ‘햄릿형 인간’과 대비되며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이상을 좇고 있는가,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가?”
짧은 여정이었지만, 돈키호테와 함께한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말처럼,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덕을,나쁜 사람을 만나면 결점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제 나는 또 다른 길, 알함브라 궁전을 향해 떠난다. 안녕, 돈키호테! 안녕, 산초 판사!당신들과 함께한 시간, 정말 행복했습니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 스페인이 낳은 불세출의 작가 세르반테스 (1547~1616) 기념비>
세르반테스 서거 300 주년을 기념해 건립한 기념비이다. 1.세르반테스, 2.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3.돈키호테의 이상형 둘시네아, 4.현실 속의 여성 아르돈사 동상이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기념비의 세르반테스, 그 아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스페인 광장의 세르반테스 기념비 뒷모습>
기념탑 꼭대기에는 오대주를 상징하는 다섯 여인이 지구를 등에 지고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데, 이는 소설 돈키호테가 세계인의
명작이라는 상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돈키호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라만차 지역의 '푸에르토 라피세'의 작은 마을에는
돈키호테가 머물렀던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 여관이 있다. - 여관 내부>
여관은 소설 돈키호테의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
직접 만든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1층 레스토랑 2층, 기념품 가게, 돈키호테 자료실(전시관)
<돈키호테가‘벤타 델 키호테’여관에서 기사작위를 수여받은 우물가>
<여관 입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돈키호테의 염원은 무엇일까?>